2017/04/18 14:47
현재의 정치 체제가 현재의 사회 성원의 의식 수준이나 이념 범주를 담기엔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건 대체로 동의하는 사실이다. 60년 이상 정상 우파 행세하던 극우 정치의 괴멸은 변화의 조짐이지만 좌파 정치가 기이하리만치 휑하니 비어 있는 상황은 여전하다. 그래서 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선거에선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다음 선거는, 그리고 그 다음 선거는 어떻게 되는 걸까?

부모들과 교육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김없이 서유럽, 특히 북유럽  교육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 말한다. '나도 그런 나라 살면 당연히 그렇게 하죠. 하지만 여긴 한국이니까 어쩔 수 없죠.' 맞는 말이다.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 은 언제나 맞다. 다만 그 말엔 두가지가 빠져 있다. 그 나라들은 원래부터 그랬는가? 주어진 현실은 앞으로도 어쩔 수 없는 건가?

그 나라들도 지금 한국 못지 않은 문제들이 있었다. 내 아이만 챙기려는 태도도 만연했다. 그러나 모든 아이의 현실을 바꾸어야 내 아이의 현실도 바뀐다고 생각한 부모들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엔 매우 소수였지만 그들이 씨앗이 되어 서서히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고 교육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다음 부모들은 더 수월했고 변화는 가속도가 붙었다. 이제 그들의 교육 현실은 그들에겐 그저 주어진 현실일 뿐이다. 사회 변화는 늘 그렇게 일어난다. 주어진 현실에 머물지 않기로 한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 변화의 주역이다. 그들이 없다면 명민하고 헌신적인 활동가도 무력하다.

지나치게 협소한 정치 체제에서 일단 최선의 선택을 하는 건 이성적 태도의 범주에 석한다. 그러나 그 협소함에 굳이 자신을 꿰어맞추어서 스스로 협소해질 이유는 없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길 소망하는 사람이 고작 문재인/안철수 패거리(지지자 아닌, 제 후보 당락에 인생이 달라지는 이해 당사자들)의 이전투구에 휩쓸리거나, 이른바 사표론에 휘둘리는 건 스스로를 모욕하는 일이 아닐까.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일과, 주어진 현실이 바뀌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언제나 함께여야 한다.
2017/04/18 14:47 2017/04/1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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