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4 16:35
(이른바 정권교체, 즉 자유주의 세력의 재집권이 확실시된다는 시점에서 적어본다.)

근래 민주주의는 대략 두가지 차원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전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민주화' 문제고, 후자는 ‘자본주의’ 문제다. 한국 사회는 87년을 기점으로 전자가 진전되어 왔지만 97년을 기점으로 후자의 문제가 오히려 악화되어 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살하는 한국인들이 '못살겠는' 이유로 꼽는 문제들은 대개 후자와 관련되어 있다. 빈부격차, 부의 세습과 신분사회화(갑질), 비정규 불안정 노동, 청년 실업, 경쟁교육, 물신주의 등등. 그에 반해 한국의 진보 시민들이 가장 긴급하고 진지하게 분노하고 행동하는 사회 문제들은 대개 전자에 집중된다.

이 희한한 상황이 오늘 한국 사회가 옴짝달싹 못하는(외신에서 '한국사회는 몇백만명이 광장에 모이는데 왜 달라지지 않을까' 질문하는) 주요한 이유다. 물론 이런 상황은 인민들이 후자의 문제를 덮고 전자의 문제에 집중하면 할수록 제 기득권과 헤게모니가 강화하는 자유주의 세력의 작품이다. 그런데 과연 진보적 시민들은 자유주의 세력의 음모에 속아 넘어간 건가? 지난 20여년 동안 나를 포함한 좌파들은 그런 전제의 논의를 이어왔다. 이른바 '가짜 진보' 논의들이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렇다면 사실관계를 다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진보시민들은 속아넘어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속아주고 있거나 속을 필요를 갖는다. 스스로 속아주는 건 현실과 대면을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을 넘어 연대하며 사회의 전망을 고민하고 변혁해나가는 게 도무지 두렵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줄창 정치적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들에만 열정을 다한다. 설사 사회경제적 주제에 관심을 갖더라도 자본주의 자체나 계급문제는 마치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 도려낸다. 속아줄 필요가 있다는 건 진보시민들이 중간계급으로서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보수적 경향이 이미 속성화되었기 때문이다.(오늘 사회를 1:99가 아니라 1:9:90으로 봐야 하는 건 그래서다.)

둘은 결국 같은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한국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에의 열정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은폐하고 퇴행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려준다. 진보시민들의 기만성과 보수성이 오늘 한국 사회의 가장 실제적인 수구 에너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진보시민의 전부인 양 주장하는 건 과하다. 사회는 일면적이지 않으며 그들의 미덕과 기여 또한 여전히 적지 않다. 그러나 그걸 빌미로 더 이상 덮고넘어가선 안된다. 만일 우리가 진심으로 전망을 말하고 싶다면 말이다.
2017/04/04 16:35 2017/04/0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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