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8/24 16:42
'하루감옥체험'을 했다. 명동성당 앞에 지어놓은 0.75평 짜리 감방 일곱 개 가운데 하나엔 내 이름이 적혀 있고 나는 그곳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나 같은 건달을 뭐에 써먹으려나 싶었지만 군말 없이 따랐다. 민가협, 그들은 우리가 알량하나마 나름의 신념을 건사하고 살수 있도록 사랑하는 가족을 담보로 제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이라면 우리 가운데 누구에게든 하루쯤 감옥 체험을 하라고 권유할 자격이 있다. 또한 하루감옥체험은 한국에는 양심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더러운 파시스트들로부터 우리의 명예를 확인할 소중한 기회다.

0.75평 짜리 감방은 내 짐작보다 더 좁았다. 이런 곳에서 수십 년을 지내고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체제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곳에 사람을 수십 년씩 가두는 국가에 우리가 걸 수 있는 신뢰는 어떤 것일까. 허락 받지 않은 상념에 빠진 나에게 그들(비전향 장기수 영감님들)이 찾아왔다. 전향서라는 이름의 종이 한 장과 수십 년의 세월을 맞바꾼 그들의 얼굴은 수도자처럼 맑았고 그들의 몸가짐은 사위를 바로 새울 만큼 정중했다. 그들이 창에 얼굴을 대고 자신을 소개한 후 "고생 많으십니다."라고 고개를 숙였을 때 나는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저 "죄송합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쯤이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곳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있던 곳과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다 했다. 그러나 그런 도량형 상의 유사함이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 수십 년 동안 여섯 면의 벽은 하루하루 그들을 향해 다가왔을 테니 말이다.

세 살쯤 되었을까. 이른바 국민의 정부 하에서 일어난 조직사건인 '영남위 사건'으로 투옥된 양심수의 딸아이가 찾아왔다. "아빠도 이런 데 계셔,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엄마 팔에 앉긴 아이의 눈엔 이슬이 맺혔고, 인사를 재촉하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자꾸만 몸을 빼면서도 눈길만은 나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곱고 예쁜 세상만 보여주기에도 모자랄 저 아이의 눈망울에 이 비열하고 사악한 세상을 마련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방법은 무엇일까.

"아저씨 힘들지 않으세요." 초등학교 일 학년 짜리 남자아이가 제 키를 넘기는 창에 간신히 얼굴을 대고 묻는다. "괜찮아, 아저씬 조금 있다 나가." "우리 아빤 광주 교도소에 있는데." "아빠가 뭘 잘못했지?" "아빤 착한 일 해서 잡혀가셨어요." 고개를 떨구는 저 아이가 익힌 세상의 이치는 '착한 일 하면 잡혀가는' 곳이다. 아이에게 양심과 정의를 가르치는 일이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정신적 성취들(학문적 예술적 문화적 혹은 종교적인)은 한낱 오물에 불과하다.

교도관들(역시 양심수 출신인 청년들)의 감시를 피해 훔쳐 본 명동거리는 텔레비전 스케치 화면처럼 낯설었다. 따가운 햇살 아래 모델 같은 몸매의 아가씨들이 잦은 집회로 길이 든 명동성당 입구를 따분한 얼굴로 흘끔거리며 지나가고, 성당으로 오르는 고급승용차들은 진입로에 주저앉은 보라색 스카프의 어머니들에게 끊임없이 비켜줄 것을 요구했다. 저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자신들이 지켜 가는 다이어트에의 신념마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갇힌 이들의 신념 덕에 가능함을 알고 있을까. 고급승용차 뒷좌석에 우아하게 들어앉은 저 귀부인은 자신이 지켜 가는 종교에의 신념마저 한여름 땡볕 아래 주저앉은 저 어머니들의 뚫린 가슴 덕에 가능함을 알고 있을까.

어머니들은 창살 사이로 내 손을 어루만지며 자기 자식인양 안타까와했다. 이곳은 공갈 감옥이고 나는 공갈 양심수지만 그들은 진짜 어머니들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제 자식의 안위만을 기원하며 살던 그들은 이제 이 나라의 가장 추악한 부위를 몸으로 겪으면서 제 자식이 풀려나고도 남의 자식 걱정에 거리를 누비는 투사가 되었다. 내 손을 잡은 채 미소지으며 한 어머니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게 엄마잖아. 엄마의 힘은 하늘도 움직일 수 있거든. 우린 무서울 게 하나도 없어." | 씨네21 1999년_8월
1999/08/24 16:42 1999/08/2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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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1999.08.24 화 어머니 규항닷넷에서 펌.

    Tracked from 문원종의 블로그 2004/08/24 02:24  삭제

    <H3 class=title>어머니</H3> <DIV id=underline> '하루감옥체험'을 했다. 명동성당 앞에 지어놓은 0.75평 짜리 감방 일곱 개 가운데 하나엔

  2. Subject: 박재우가 주성영 에게.

    Tracked from RATM 2004/10/17 19:18  삭제

    30초간의 기나긴 고민끝에 당신에게 높임말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민가협을 비난할 자격을 갖춘자를 본적이 없다. 그러나 난 삼척동자도 한나라당을 비난할 ?

  3. Subject: general vet hospital

    Tracked from general vet hospital 2014/05/18 22:3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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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Subject: charlotte vet help

    Tracked from charlotte vet help 2014/06/03 09:5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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