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3 16:23
글을 되도록 쉽게 써야 한다는 생각은 근대적 교의에 입각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전근대성을 고려할 때 여전히 유효한 교의다. 그러나 어려울 수밖에 없는 글도 있다. 이를테면 주디스 버틀러 같은 사람은 쉬운 글은 기성 질서의 언어라는 뜻이며 새로운 질서의 언어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치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질서의 언어 역시 다시 쉽게 풀어 쓰는 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면 실제 현실 변화와 유리된 소수의 지적 유희에 머물게 되니, 새로운 질서의 언어는 아니다. 결국 우리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글을 되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하되, 어려울 수밖에 없는 글도 있음을 인정하면 된다. 정작 문제는 새로운 질서의 언어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어렵게 쓰는 경우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의 의미에서 ‘기지촌 지식인’이라 불러왔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가 말하길 ‘그들은 용기가 없는 것’이라 했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제 글에 지적 고유성이 없다는 사실이 폭로될까 두렵고, 제 글이 실제 현실과 연루되어 안온한 일상에 지장이 생길까 두렵다. 그들은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없어 어렵게 쓴다.
2016/08/23 16:23 2016/08/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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