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19 14:58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썩은 어금니를 빼러 부대 병원에 갔다. 그 시절 군인가족들은 그곳에서 공짜로 진료를 받곤 했다. 군의관이 마취주사를 놨지만 마취가 되지 않았다. 한대 더.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대 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뭔가 짜증스럽게 혼자 중얼거리던 군의관은 이빨을 빼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는 내 팔과 다리를 위생병들이 붙들고. 그날 다시는 치과엔 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분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군의관의 엄포에 계급이 낮은 아버지가 가세한 건 더욱 비참했다.

3년 전, 오른쪽 사랑니가 반쯤 썩어 이따금 아프고 볼을 자꾸 갉았다. 많이 불편했지만 어릴 적 다짐 때문에 치과에 갈 생각은 안 했는데 어느 날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김단이 그랬다. “아빠 입에서 냄새 나.” 다행히 마취가 잘 되었다.(사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데 병원을 나와 30분 쯤 지나자 아프기 시작했다. 나중엔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두 시간 쯤 지나 물고 있던 솜을 뺐는데 피가 계속 나왔다. 10분이면 큼지막한 피 덩어리를 뱉어내야 했다. 자정 무렵 가만 생각해보니 이런 속도로 피를 흘리면 아침이 되기 전에 죽을 것 같았다. 자고 있는 의사를 불러내 다시 마취주사를 놓고 꿰맸다.

오늘 아침 왼쪽 사랑니를 뺐다. 3년 전 의사가 앞의 이를 파고 든 왼쪽이 좀더 심각하다고 했었는데 아직 아프지도 않은 이빨을 한개 더 뽑기엔 상황이 좀 심란했다. 작년부터 그 이빨이 아프기 시작했고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며칠 전 제천 모임 날엔 이틀 동안 계속 아팠다. 잠 한숨 못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어릴 적 다짐이고 3년 전의 사고고 소용이 없었다. 뺀 지 다섯 시간이 더 지났는데 아프지도 않고 피도 안 난다.(사실 이 역시 당연한 것이지만) 남만큼만 되도 이렇게 기쁘다. 이 심정 누가 알랴.
2004/07/19 14:58 2004/07/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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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고통

    Tracked from 꿈쟁이들의 꿍꿍이 2004/07/19 16:35  삭제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고, 배를 골아 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힘든 순간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거의 아

  2. Subject: 오늘의 문장.

    Tracked from 차례로 익사시키기. 2004/07/20 00:42  삭제

      남만큼만 되도 이렇게 기쁘다. 이 심정 누가 알랴.   오늘 본 문장 중에 가장 와닿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김규항씨가 글을 (단순한 글. 출판사 교정자 기준에서의 글) 잘 ?

  3. Subject: 후회

    Tracked from JFury Blog 2004/07/21 10:28  삭제

    2년전 의정부에 위치한 어느 군병원.   군의관은 다썩어버릴 때로 썩은 내 오른쪽 어금니 - 사랑니가 아니다 - 를 &nb

  4. Subject: Free log furniture plans.

    Tracked from Freedom furniture. 2010/07/30 13:0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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