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5 12:30

9월3일 삼성전자는 갑작스레 ‘보상위원회 발족’을 발표했다. 참으로 삼성스러웠다. 일이 시작된 건 2007년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같은 공장에 백혈병 환자가 여럿임에 주목하면서부터다. 삼성은 산재가 아닌 개인적 질병이라고 강변하며 유족들을 돈으로 회유하려 했다. 2008년 반올림(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늘어가던 2013년 1월 삼성전자는 반올림과 교섭에 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압적인 태도와 사실 왜곡, 피해자 회유 시도 등은 달라진 게 없었다. 2014년 3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되면서 삼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급등하자 삼성의 태도가 돌변했다. 5월14일 삼성전자 권오현 사장은 백혈병 피해자에 대해 공식 사과하며 보상을 약속했다.

8월 문제 해결을 위한 외부 조정위원회 구성이 제안되었다. 2015년 1월 조정위원회는 교섭의 세 주체(삼성전자, 반올림, 가족대책위)에게서 주장과 근거를 제출받고 공개적으로 설명하게 했다. 7월23일 조정위원회는 ‘보상’ ‘사과’ ‘재발방지책’에 대한 구체적인 권고를 담은 110여쪽짜리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은 삼성이 1000억원을 출연하되 삼성으로부터 독립된 사회적기구를 만들어 문제 해결을 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9월3일 삼성은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거부하고 ‘보상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삼성은 보상위원회가 조정위의 권고 사항을 수용하면서도 좀 더 실효성있는 방안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 직접 교섭보다 외부 조정위원회가 유리할 거라 판단했던 삼성이 조정위원회가 예상보다 중립적이고 공정한 경향을 보이자 아예 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고 모든 문제를 다시 제 통제 범위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건 저간의 경과를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삼성은 조정위원회 권고안에 제시된 금액인 1000억원의 사내 기금을 만들어 보상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보상위원회로 가면 1000억원의 지출 내역은 누구도 알 수 없게 된다. 삼성은 2011년 직업병 논란이 일자 ‘퇴직자 암 발병자 지원제도’라는 것을 자체적으로 시행한 바 있지만 누가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또한 보상 재원은 1000억원으로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만 200명이 넘고, 본격 보상이 시작되면 훨씬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삼성은 조정위원회 권고안의 보상 대상과 보상 액수가 과다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희귀질환 피해자와 ‘생식독성’(2세의 선천적 질환, 유산 등) 피해자들은 아예 제외하고 있어서 많은 피해자들이 보상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재발방지책도 문제다. 조정위원회 권고안은 공익법인이 재발방지책도 총괄하도록 했지만 보상위원회로 가면 재발방지책은 삼성이 알아서 하게 된다. 말이 되는가. 삼성이 알아서 재발방지책을 만들고 실천할 기업이라면 애초부터 이 문제는 시작되지 않았거나 진즉 해결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삼성의 태도는 시계추처럼 오갔다. 여론의 관심이 적으면 파렴치한 태도로 일관하다 여론이 나빠지면 사과를 하는 등 고개 숙이는 비굴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눈치를 살피다가 여론이 어지간해지면 그들이 장악한 언론의 호위를 받으며 원래 태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파렴치한 태도든, 비굴한 태도든 다 삼성스러운 태도이며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스러움의 요체는 ‘이윤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경영 철학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삼성을 압박하여 삼성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내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여론, 즉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 만일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되 특별한 불행에 처한 사람들의 일이라 여겨 동정하는 데 머문다면 어려울 것이다. 동정심은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약속>을 보며 눈물 흘리는 순간엔 치솟다가 고단한 일상에 파묻히다 보면 어느새 사그라드는 게 동정심이다. 우리는 동정심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이 문제와 내 삶의 관련성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물론 모든 직장과 노동현장에 백혈병 위협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직장과 노동현장엔 산재 위험이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낸다면 내 노동 안전도 그만큼 진전을 이루지만, 이 문제가 이대로 삼성의 손아귀로 넘어간다면 내 노동 안전은 2007년 이전 수준으로 퇴행하게 된다. 미래에 내 아이의 노동 안전은 또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동정이 아니라 연대다. 나와 무관한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게 아니라 내 노동과 내 삶이, 내 아이의 미래가 걸린 싸움이기에 연대해야 한다. 자본과 그들의 언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고하게 연대하고 있다. (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2015/09/15 12:30 2015/09/1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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