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18 23:38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이고, 평론을 쓰며 한 때 대중음악 개혁운동에 열심이던 후배는 음악 공부를 마무리하겠다며 2년 전에 영국으로 갔다. 보름쯤 한국에 다니러 온 그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생각이 많이 변한 것 같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작은 전망이라도 주어서 보내야 할텐데. 며칠 전에 그가 보낸 편지.

드릴 말씀이 참 많습니다. 소위 선진국이자 록의 본고장이라는 런던에서 보고 느낀 것도 많고... 선배님 최근 글에 피곤함에 대한 이야기나 느낌이 많이 보이던데, 저도 요즘 마찬가지로 느낍니다.
일단 음악 이야기만 간단히 드리자면 진지한 록은 전세계적으로 이제 전멸이라는 것이 런던 연주 바닥에서 2년간 생활한 결론입니다. 핑크 플로이드며 레드 제플린의 영광은 다 죽어 이제 회생할 길이 없습니다. 런던 음악씬은 세계 최악의 싸구려 씬으로 변하고 있구요.
런던 음악판, 아니 전세계 음악판이 이렇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자본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지금 서구 음반 시장에는 음반사가 거대 메이저 다섯 개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색깔 있는 곳들은 전부 몰락하거나 흡수돼서 생명력을 잃거나 인디도 아닌 동네 레이블로 전락했지요.
결국 모든 것이 전부 단기적인 시장 전략으로 결정되고, 음악적인 고집이나 뭔가를 창조해 보겠다는 욕심은 메이저 씬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그 결과 연주인들은 실력 불문하고 먹고 살기 위해 CF 음악이나(그것도 운이 아주 좋아야 합니다) 유람선 밴드로 취직하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절반 정도가 호화 유람선 밴드 취직이 ‘꿈’ 이라면 상황이 어떠한지 짐작이 되시려나요.
암튼, 세상 돌아가는 걸 아무리 봐도 역시 답은 한 가지 방면으로 수렴되는 것 같습니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세상을 모든 면에서 망치고 있는데 도무지 그걸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인정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2004/07/18 23:38 2004/07/18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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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의미 있는 글들?

    Tracked from 나무와길 2004/07/21 14:02  삭제

    주로 붙여다 놓을 이 공간에 이름을 뭘로 할까? 의미가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 본다. 의미가 있는 것은, 내 삶을 변화시키기에 힘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머리에만 남아, 빙빙 복잡하게 만드

  2. Subject: [김규항] 영국에서 온 편지

    Tracked from With an alchemist + Into a B... 2004/07/23 02:09  삭제

    영국에서 온 편지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이고, 평론을 쓰며 한 때 대중음악 개혁운동에 열심이던 후배는 음악 공부를 마무리하겠다며 2년 전에 영국으로 갔다. 보름쯤 한국에 다니러 온 그를 ?

  3. Subject: 영국에서 온 편지

    Tracked from musiki의 잡동사니 2004/07/29 13:46  삭제

    <DIV id=underline>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이고, 평론을 쓰며 한 때 대중음악 개혁운동에 열심이던 후배는 음악 공부를 마무리하겠다며 2년 전에 영국으로 갔다.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