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7 23:50
창비나 문학동네 같은 문화권력을 비판하는 동시에, 내가 연루된 미시적 문화권력에 대해서도 예민해진다면 좋을 것이다. 폭력적이지 않고 권위주의적인 외양도 없이 친구로 지내지만 뭔가 부적절한 일이 있을 때 비판이나 충고가 어렵다면, 그래봐야 소용도 없고 불편만 치르게 될 거라 느껴진다면, 그건 그가 단지 비판이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문화권력이 작동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단지 비판이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얼마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관계를 끝내면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문화권력의 내용이다. 두 사람 사이의 상황일 수도,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여러 사람 사이의 상황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기 어려운 인간 관계를 운영하면서 상대를 혹은 상대들을 '좋은 친구’ 혹은 ‘좋은 친구들’이라 부르곤 한다. 그는 우리 주변에 매우 많다. 내가 그에 지배되고 있거나 심지어 그가 나일 가능성도 많다는 뜻이다.
2015/06/27 23:50 2015/06/27 23:50

트랙백 주소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