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4 17:07
칼럼 '포스트모던에의 질문'에서 백낙청에 관한 묘사를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어 적는다. 나는 백낙청이 단지 문화권력이라서가 아니라 '진보적 수구'의 배후이자 좌장이기에 그에게 비판적이다. ‘수구’라는 말은 반드시 ‘보수’라는 말과 짝을 이룬다. 그러나 보수적 수구는 실은 수구의 절반일 뿐이다. 수구는 보수적 수구와 진보적 수구로 구성된다. 민주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진, 40대 이하의 어지간한 시민들에게 보수적 수구의 영향력이 극히 미미한 오늘 좀더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는 건 진보적 수구다. 진보적 수구는 ‘체제 변화’에 쓰일 모든 진보적 자원과 에너지를 ‘정권 변화’에 쓸어넣음으로써 체제를 수호한다. 보수적 수구가 경제적/사회적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이라면, 진보적 수구는 그에 더해 대중의 존경까지 누린다. 그들은 ‘수구보수 세력과 싸우는 의인’인 것이다. 예수 당시의 수구세력과 싸우며 의인으로 불리던 바리새인들처럼. 존경받는 수구. 얼마나 웃기는가, 아니 얼마나 악질적인가.
2015/06/24 17:07 2015/06/24 17:07

트랙백 주소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