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13 13:49
제 아무리 난해해도, 소수의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더라도, 지혜와 통찰을 제공한다면 그 이론의 가치는 인정할 수 있다. 그 지혜와 통찰을 다시 쉽게 풀려서 많은 사람이 공유하면 좋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난해한데 정작 그 이론이 주는 통찰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면 그 이론은 그저 딱한 것이다. 오래 전 이진경 씨가 ‘탈주’ ‘횡단’의 현실적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걸 보고 좀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아니 고작 그런 이야기를 저렇게 어렵게 한단 말인가!’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배운 사람들은 대개 책과 이론을 통해 진리에 접근한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진리에 접근하는 배운 사람들의 방법일 뿐이다. 그것은 진리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책과 이론이 아니라 진실한 삶과 자기 성찰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본다. 많이 배우지 않았고 난해한 개념어 따위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현명한 사람들 말이다. 삶을 통한 방법 역시 진리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진리에 접근하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다. 진리는 결국 삶을 위한 것이며 삶을 통한 방법이 삶과의 괴리도 적기 때문이다. 책과 이론을 통한 접근도 결국 삶에 천착하지 못하면 유희에 불과하다. 생각해보라. 오로지 책과 이론을 통해서만 모든 것을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가련한가.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면 당연히 깨우치는 일상의 깨달음마저도 책과 이론을 통해서만 깨우치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생경하고 현학적인 이론을 들먹이지 않고는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가련한가.

덧붙이자면, 프랑스 철학자들 특유의 현학은 적어도 프랑스에선 별 문제가 없는 것이긴 하다. 프랑스 대중들 특유의 철학적 기반과 현학적 문화를 전제로 한. 그러나 전혀 그렇지 못한(않은) 사회에 그 현학이 직수입될 때 그것은 괜스레 어렵고 현학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촘스키 선생이 ‘그것들을 불속에 던져버려라’라고 말한 바 있지만 그 역시 프랑스 안에서라면 ‘쓸 만한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한국은, 알다시피 프랑스의 '외부’다.
2004/07/13 13:49 2004/07/1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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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가련한 자와 속물

    Tracked from 하얀 송곳니 2004/07/15 00:38  삭제

    속물들 - 김규항 고백: 김규항씨의 글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그의 글은 때때로

  2. Subject: 속물들

    Tracked from daily link 2004/07/15 17:08  삭제

    “아니 고작 그런 이야기를 저렇게 어렵게 한단 말인가!”

  3. Subject: 김규항의 글을 읽고

    Tracked from blogtest 2004/07/17 20:18  삭제

    오랫만에 김규항의 블로그에 갔다가 재미난 글들이 있기에 두개를 가져왔다. \'탈근대\'라는 철학적 조류를 가차없이 까뭉게고 있는데 그 표적은 또다시 이진경이다. 개인적으로 김규항에 대해

  4. Subject: 김규항씨의 블로그에서

    Tracked from 우주를 떠도는 고래이야기 2004/07/18 13:45  삭제

    김규항의 블로그 지적인 허세로 치장한 속물들에게 시원하게 찬물을 끼얹는 김규항씨에게 공감하면서,,,,,,,, (중략) " ,,,,진리를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배운 사람들은 대개 책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