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1 13:31
“자녀를 특목고와 명문대에 보내는 강남 좌파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도 이상해요. 보수 인사뿐만 아니라 김규항 선생처럼 진보적인 분도 이런 얘기를 하던데,그러면 특목고와 명문대는 우파의 자녀들이 독식하기라도 해야 마땅하다는 건가요? 물론 대외적으로는 진보적인 언사를 늘어놓으면서 집안에서는 자녀를 몰아세우는 진보적 지식인의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일리가 있는 얘기지요. 하지만 제가 아는 한, 자녀를 특목고에 보낸 유시민, 조국, 곽노현, 신영복 등 가운데 그것 때문에 안달하거나 자녀를 닦달한 사람은 없어요.”(이범 <우리 교육 100문 100답>)

오랜만에 들른 대형서점에서 미처 챙겨 읽지 못한 교육 관련 책들을 훑어보다 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종종 이런 오해를 만나곤 합니다. 물론 순수한 오해도 있고, 오해의 형식으로 불편이나 반발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특목고와 명문대는 우파의 자녀들이 독식하기라도 해야 마땅하다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답을 하면 이렇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오해가 나오게 된 제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보수적인 부모는 편안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몰아넣고, 진보적인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몰아넣는다.” 또 이런 것입니다. “보수적인 부모의 교육 목표는 아이가 일류대 학생이 되는 것이다. 진보적인 부모의 교육 목표는 아이가 진보적인 일류대 학생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진보 부모는 이념이나 세계관뿐 아니라 먹고사는 데 별 문제가 없는 중간층 인텔리 부모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데는 실은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민 부모들의 울분입니다.

서민 부모들이 많이 참여한 교육 강연을 하면 반드시 나오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 참 잘 들었습니다” 하고 나서는 “그런데 선생님 자녀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청중은 자글자글 웃고 저도 웃지만 질문엔 깊은 울분이 담겨 있습니다. 질문을 풀면 이런 겁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 교육문제 비판하고 교육의 변화 말하는 사람들, 자기 아이들은 다 알뜰하게 경쟁교육 챙기지 않나. 진보인사라고 하는 사람들 치고 아이 일찌감치 외국 보내거나 특목고 보내지 않은 사람이 없더라. 당신들 말 순진하게 믿고 경쟁교육 피하다간 나와 내 아이만 바보된다. 안 속는다!”

그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곤혹스럽습니다. 뒤가 구려서가 아닙니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저에겐 올해 스물두 살 된 딸과 열아홉이 된 아들이 있는데 둘 다 입시 경쟁교육은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시킨 게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길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질문에 “난 그런 이중적인 진보가 아닙니다. 언행일치의 진보입니다”라고 답한다면 그 또한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그래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고 제 아이들의 교육 상황에 대해 아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찬찬히 답을 하곤 합니다. 그럼 또 질문이 꼬리를 물고, 저는 또 답합니다.

강남 좌파라 불리는 이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서민 부모들의 울분은 강남 좌파의 아이들이 특목고와 일류대를 가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억지로 특목고·일류대에 보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공부도 재능의 하나이니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당연히 공부로 나가는 게 좋겠지요. 문제는 서민 부모의 아이들은 공부에 재능이 있어도 특목고와 명문대에 가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교육이 시장의 바다에 던져지면서 특목고와 일류대는 빠른 속도로 상위계층 아이들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과 성적의 상관관계가 갈수록 분명해지면서 상위계층 부모들이 제 아이들의 성적을 비정상적 수준까지 끌어올려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집 아이들이 잠 안 자며 열심히 한다고 해도 따라가긴 어렵게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런 겁니다. 빠듯하게 영어학습지 구독하는 아이와 강남의 이름난 영어강사에게서 강의를 듣고 방학 때면 영국이나 미국에서 지내는 아이가 영어성적 경쟁을 하면 누가 이길까요? 그건 경쟁이 아닙니다. 그걸 경쟁이라고 말한다면 사람을 조롱하는 일이죠.

서민 부모들은 그런 경쟁현실 속에서 가랑이가 찢어져도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교육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변화를 말하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는데, 가만 보니 그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은 다 알뜰하게 경쟁교육 챙기더라는 겁니다. 물론 강남 좌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강남 우파보다 부자는 아닙니다. 대체로 중산층 수준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들의 경제적 안정에 교육적 문화자본(대개 우등생이었고 공부를 좋아하는 그들의 유전자와 환경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향)이 합쳐지면서 강남 우파와 대등한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범 선생 표현을 빌리면, 굳이 안달하거나 아이를 닦달하지 않고도 말입니다.

물론 그래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강남 좌파든 진보든 이 냉혹한 세상에서 제 아이의 안위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체 진보라는 게 뭔가요. 적어도 나와 내 새끼의 안위만 챙기는 데 그치지 않는 사람 아닌가요. 남의 문제, 남의 새끼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하며 좀 더 나은 현실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닌가요. 그들이 아이에게 안달하지 않고 닦달하지 않을 수 있는 건 그들의 경제적 안정과 각별한 문화자본 덕입니다. 경제적 안정도 문화자본도 없는, 안달하고 닦달할 건덕지도 없는 부모들이 존재하는데 그런 기득권을 점잖게 행사하기만 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돈 내가 쓰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강남 우파와 다를 바가 무엇일까요.

그래서 저는 ‘진보 부모가 그럴 수 있는가’라는 강퍅한 비판을 ‘그렇게 교육하면서 굳이 진보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고쳐 함께 생각하고 싶습니다. 강남 우파 부모는 아이가 조중동을 애독하는 일류대 학생이 되길 바라고, 강남 좌파 부모는 제 아이가 경향과 한겨레를 애독하는 일류대 학생이 되길 바라는 게 상황의 전부라면 교육에서 진보의 가치는 없는 셈입니다. 변화도 없는 셈입니다. 아이의 재능과 가능성을 제한하거나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내 아이, 남의 아이를 함께 생각하고 고민할 때 비로소 더 나은 교육 현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말입니다.

“세상의 오른쪽엔 우파 부모들이 있고 왼쪽엔 좌파 부모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아래에 가난한 부모들이 있다.” 이게 현실이고, 우리는 그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2015/01/21 13:31 2015/01/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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