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5 22:27
어어부 프로젝트의 새 앨범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은 일종의 음악극이다. 배우 문성근씨가 내레이션을 맡은 2번 트랙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부쳐’에 의하면 화자는 어느 날 ‘나그네’라 적힌 종이뭉치를 줍는다. 뭉치는 1년에서 7일 빠진 358장의 일기다. 일기의 주인공은 서울에 사는 40대 남성이며 직업은 탐정이다. 초등학생 딸아이는 전 부인과 살고 있고 홀어머니는 평택에 살며 여동생들은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다. 소득은 한 달 삼사백 만원 정도를 유지했지만 일기를 쓸 무렵엔 백오십까지 떨어져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나는 이 앨범의 곡들을 지난 6월 어어부 공연에서 처음 들었다. 어어부의 두 멤버 백현진, 장영규 외에 그들과 식구나 다름없는 뮤지션들인 방준석, 이병훈 등이 참여한 공연은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공연이 하나의 음악극 덩어리로 남진 않았다. 전체보다 세부부터 집중하는 내 습성 때문일 것이다. 11월 하순 어느 늦은 밤 백현진씨가 불쑥 전화를 해선 ‘새 앨범 작업이 마무리되어 가는데 발매 전에 들어보고 글을 써줄 수 있느냐’고 했다. ‘당신이 뭐라고 쓸지 매우 궁금해져서’라고 했다.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고 존중하는 나는 조금은 무례할 수도 있는 제안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메일로 도착한 음원들을 일별하다 어느새 거듭 듣게 되었다. 일할 때는 피시파이 장비로 정교하게 스튜디오 풍으로 듣고 운전하거나 이동할 때는 다소 거칠게 라이브 풍으로 들었다. 글은 쓰지 않고 잘 퇴고된 가사들은 음미했다. 일주일쯤 지나 백현진씨가 글은 언제쯤 볼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나는 ‘듣는 즐거움이 커서 잘 모르겠다’고 웃으며 대꾸했다. 어어부 프로젝트가 첫 앨범 <손익분기점>을 낸 건 1997년이다. 한국이 ‘구제금융 사태’라는 세계 자본주의의 통과의례 앞에 선,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이 된 전설적인 민주화운동가가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충성을 맹세한, 한국 사회가 십수년 후 ‘세월호 참사’라는 그 한 귀결을 향해 돌진하게 된 ‘분기점’이 된 그 해다.

15번 트랙에 “막장까지 가는 신자유주의”라는 가사가 있긴 하지만, 어어부는 직설적인 정치적 저항을 추구해온 밴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정치적 저항’이라는 그물로는 포획할 수 없을 만큼 넓고 촘촘하다. 정치의 전면은 노동유연화, 복지 후퇴, 민영화 따위의 자유주의 교리들로 짜여 있다. 그러나 그 후면은 바로 그 교리에 녹아나는 사람들의 삶으로, 돈에 대한 불안감에 찌들어 수백년을 이어온 제 삶의 철학과 생활양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으로 짜여 있다. 결국 저항의 요체는 ‘정치적 저항’을 넘어 ‘여전히 나로 존재해내는 것’ ‘내 나름의 삶의 철학과 생활양식으로 살아내는 것’ 등이다. 어어부의 음악은 언제나 그 한 풍경을 이루어왔다.

‘한국적 아방가르드’라는 그들에 대한 수사가 드러내듯, 장영규가 빚어내는 장인적이지만 실험적인 사운드와 백현진의 울림이 좋으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목소리는 짐짓 소란스럽고 유별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 소란스러움과 유별남은 실은 귀를 쉽게 울리는 하고많은 ‘음악 공산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제공된 출입문 같은 것이다. 출입문을 일단 통과하면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적막과 고요가 기다리고 있다. 적막과 고요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담담하게 관조하고 필요할 만큼 경멸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언젠가 나는 이렇게 썼다. “좋은 글은 불편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이 아프다.” 어어부의 음악은 ‘좋은 음악이자 좋은 글’인 셈이다.

어어부의 적막과 고요는 조르지오 모란디의 정물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과 ‘출발 방향만 다른 같은 내용의 것’인지도 모른다. 모란디의 정물화처럼 적막하고 고요하게 느껴지는 그림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 적막과 고요는 우리의 눈을 통과하여 가슴에 다다르는 순간부터 온몸을 쩌렁쩌렁 울려댄다. 모란디는 볼로냐의, 침실이자 작업실인 작은 방에서 몇 개의 병을 탁자에 올려놓고 공간, 빛, 색, 형태를 평생을 변주했다. 세계대전 기간엔 병을 조개로 바꾸어 일상을 파괴한 외부에 대응하며 제 우주의 운행을 지속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모란디가 그 몇 개의 병과 조개에 ‘가시적인 세계의 모든 것’을 담아냈음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모란디는 오늘 우리로 하여금 성공과 환호라는 후기 자본주의에서 삶의 목표로부터 ‘경멸적 차단’의 순간을 마련하게 해준다.

‘분기점’ 이후 십수년 동안의 돌진의 필연적인 한 결과라 할 세월호 참사도, 우리의 마음을 찢어낸 다른 많은 사건들도 이제 곧 지난해의 일이 된다. 그러나 지난해의 일이 지난 일이 되는 건 아니며 우리는 다름없이 이 비루하고 고단한 현실에 붙들려 살아갈 것이다. 그런 우리가 이 해를 지난해로 만드는 시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현실과 현실에 붙들린 내 삶을 잠시라도 바라보는 것 아닐까. 어어부와 모란디는 그 일에 얼마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앨범은 모레 발매되며 모란디는 마침 덕수궁(국립현대미술관)에 와 있다. (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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