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26 02:14
김연아 씨의 ‘도둑맞은 메달’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정작 분노해야 할 제 삶과 관련한 현실 문제에는 분노하지 않는다는 개탄이 있다. 수긍이 가는 이야기지만, 그런 이야기는 거꾸로 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김연아의 일에 분노하느라 현실 문제에 분노하지 않게 된 건 아니니 말이다. 사람들은 김연아가 메달을 도둑맞든 않든 현실 문제에 분노하지 않거나 분노했다. 이번 일은 오히려 ‘분노의 확인’이라 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분노하지 않는, 분노하는 법조차 아예 잊어버린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실은 얼마나 켜켜이 분노가 쌓였기에 김연아의 일에 저리 분노할까, 라고 말이다.

그 분노들은 ‘도둑맞은 메달’에 소용되지 않았다.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금세 수십만명이 참여할 만큼 열띠었음에도 ‘도둑맞은 메달’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연아의 마지막 경기는 이미 금메달인가 은메달인가를 따질 이유를 훌쩍 뛰어넘은 차원의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여왕의 퇴위식이었다. 김연아는 마지막 경기의 음악으로 존 레넌의 ‘이매진’을 선택했다. 10대 시절부터 한국 엘리트 체육의 영웅으로서 국가주의의 멍에를 지고 살아야 했던 그가 국가는 물론 종교도 사적 소유도 어떤 강권적 지배도 우상도 없는 세상을 노래하는 아나키스트의 성가, 이상주의자의 성가를 선택한 것이다. 여왕의 퇴위식은 그렇게 영원한 여왕의 명예와 지위를 선포하는 의식이 되었다.

이채로운 건 많은 한국인들이 그를 ‘여왕’이라 부르면서도 동시에 ‘연아’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마치 친근한 아이를 부르듯 말이다. 물론 그 어느 한국인의 ‘연아’에도 하대의 뜻이 들어있진 않다. 10대 소녀 시절부터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연아’로 불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여왕이 된 후에도 변함없이 아니 더 광범위하게 ‘연아’로 불린다는 사실은 이채로운 일이다. 한국인들에게 김연아 씨는 ‘여왕’이자 ‘연아’다. 여왕과 연아.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이 극명한 대비와 중첩 속에 오늘 한국인들의 삶이 만화경처럼 투영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스물다섯에 제 분야에서 인류의 정점에 오르고 일생 동안 그 명예와 지위를 확보한 김연아의 삶은 오늘 한국인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몇 광년은 동떨어진 것이다. 오늘 스물다섯 한국인의 일반적 삶은 어떤 것인가. 복잡한 사회학적 통계나 자료를 들먹이는 대신 노래를 하나 떠올려보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20대를 넘기는, 더는 질풍노도의 청년이 아니게 된 사람의 애수와 회한을 담은 노래다. 꽤 오랫동안 그 노래를 부른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서른 즈음에 기막히다고 여겨온 노래다. 그런데 지금 서른 즈음인 누군가가 그 노래를 부르는 풍경을 상상해보면 어떤가. 어딘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늙은이 같은 노래를 부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서른 즈음에’는 이제 마흔 즈음에나 어울릴 노래가 되었다. 오늘 한국에서 서른은 어른이 되고도 남은 나이임에도 실제론 어른이 될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서른이 그러한데 고작 스물다섯은 말해 뭣할까.

그들이 옛사람들보다, 김광석의 세대보다 게으르거나 철이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옛사람들보다 김광석의 세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어른이 되기 위해, 행여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할세라 사력을 다한다. 한국이라는 사회, 이 괴이한 자본주의 체제가 그들이 성장을 못하도록, 서른이 되어도 어른이 못 되도록 억누르고 짓누른다는 이야기다. 이 괴이한 체제에 한국인들이, 특히 그들보다 윗세대의 한국인들이 모두 납작 엎드려 있다. 촛불시위도 있고 나꼼수도 있고 부정선거 규탄도 있고 이런저런 역동적인 저항들이 지속되는데 무슨 소리냐고. 역동적인 저항의 풍경 역시 괴이한 자본주의 앞에는 납작 엎드려 있다. 이를테면 촛불을 들고 박근혜를 규탄하는 민주시민은 자정 즈음 슬그머니 휴대폰을 열고 제 아이가 학원에 다녀왔는지 확인한다. 규탄하는 그들은 또한 납작 엎드려 있다.

제 삶과 몇 광년은 동떨어진 여왕을 ‘연아’라 부르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그 납작 엎드린 삶의 비루함과 비참이 투영되어 있다. 이 괴이한 사회를 살아내느라 켜켜이 쌓인 분노를 꽁꽁 숨긴 채 살아가는 그들은 김연아의 ‘도둑맞은 메달’에 대한 분노로 제 분노가 여전함을 확인한다. 스물다섯에 이미 이 현실에서 훌쩍 날아오른 여왕을 ‘연아’라고 부르길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훌쩍 날아오르고 싶은 제 꿈을 간직한다. 지사도 투사도 아니며 그저 살아내는 사람들이지만, 분노할 줄 모르며 분노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처럼 살아가지만,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제아무리 도저하고 영웅적인 엘리트들이라 할지라도 눈곱만큼의 새로운 역사도 짓지 못한다는 사실을, 걸핏하면 개탄을 일삼는 조급증 걸린 엘리트들에게 슬쩍 내비친다. 친애하는 그들의 여왕, ‘연아’와 함께.(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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