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2 21:06
대개의 사람들은 765kV 송전탑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송전탑은 154kV 이고 크다 싶은 게 345kV이다. 765kV 송전탑은 높이만 95미터이며 한수원 자료에 의하면 150m 짜리도 있다. 20층 아파트 높이가 50m다. 한전은 밀양에 건설할 69개의 765kV 송전탑이 신고리 3호 핵발전소의 전력을 경북 지역에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북의 전력 자급율은 이미 충분하다. 밀양 송전탑은 핵발전소의 전력을 서울에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서울의 전력 자급율은 고작 4%다. 자급율이 100~400%에 이르는 지방에서 전력을 끌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밀양에 765kV 송전탑을 세워야 하는 건 아니다. 기존 송전탑을 증량하는 방식으로 전력 공급은 가능하다. 765kV 송전선로 건설을 강행하는 건 신고리 5, 6호 등 더 많은 핵발전소를 짓기 위한 것이다. 또 하나 한전 스스로 밝힌 희한한 이유가 있다. 핵발전소 수출 계약을 맺은 아랍에미레이트에 ‘2015년까지 신고리 3호 핵발전소가 가동되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기로 했다’는 것이다.

서울 사람들이 전기를 너무 펑펑 써서 생긴 일이라는 말이 그르진 않지만 구분이 필요하다. 요즘 가정집에서 어디 전기를 펑펑 써대는가. 전기요금이 비쌀 뿐더러 냉장고에 김치냉장고까지 지고 살아야 하는 도시 생활에선 자칫 할증이라도 맞을까봐 지난여름 같은 무더위에도 에어콘 한번 켜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마트나 백화점이나 극장 같은 곳은 불야성을 이룬다. 공장은 전기로 용광로까지 돌린다. 워낙 싸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이나 독일의 1/3 수준으로 생산원가에도 못 미친다. 밀양 송전탑은 자본의 이윤과 자본의 시장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한전은 송전탑의 인체에 대한 피해는 과학적 근거가 없고 전기설비기술기준치인 전자파 833mG 이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국제비전리방사선보호위원회(ICNIRP)의 ‘단기간 고노출’ 기준치를 가져온 것이다. 송전탑 아래 주민들은 24시간 1년 내내 전자파에 노출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파 3~4mG를 발암 가능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송전탑 1km 이내의 집과 논은 재산 가치가 아예 사라진다. 평생 땀으로 일군 집과 논을 그렇게 빼앗기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송전탑의 인체에 대한 피해에 대한 과학적 논란은 실은 무망한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비롯, 매년 3% 이상 성장하지 않으면 고장이 나도록 되어 있는 자본주의 체제와 지구가 더는 양립할 수 없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핵 발전은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지구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폭력이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와 사고 후의 범주도 없고 기한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은 핵 발전의 어리석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핵 발전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여전히 높지 않은 이유는 ‘핵 발전은 싸다’는 선전 덕이다. 핵 발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발전 비용이 아니라 발전소 폐쇄비용과 핵폐기물 관리 및 사고 발생시 처리비용이다. 그걸 제대로 계산하면 핵발전은 가장 비싼 발전 방식이다.

11월 28일 고리 1호 핵발전소가 고장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한전의 주가는 떨어진 반면 재벌 계열 발전회사들의 주가는 즉시 올랐다. 현재 한전은 전기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구매한다. 민간 발전회사의 수익을 보장하는 독특한 구매 방식 덕에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길수록 한전은 비싼 값에 전기를 사야 한다. 지난해 3대 민간발전회사인 SK E&S, GS EPS, 포스코에너지의 영업이득은 8,400억 원이었다. 한국전력은 8,179억 원의 영업 손실을 봤다.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과 보조금으로 기업이 얻은 이익은 2조8천억에 이른다. 송전탑 사태도 여름마다 불거지는 ‘블랙아웃’ 위기론도 결국 자본의 한판 놀음일 뿐이다.

7순의 노인들이 7년 동안 매일 산을 오른다.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했는데 이명박을 거쳐 이제 박근혜 정권이다. 노인들이 한전직원과 경찰과 용역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건 일상이다. 해도 해도 안 되니 할머니들이 나체시위도 했고 지난해 1월엔 할아버지 한분이 분신하기까지 했다. ‘전원개발촉진법’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된다. 유신 말기인 1978년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 대통령이 만든 이 법은 사업 승인만 나면 도로법·하천법·수도법·농지법 등 19개 법령의 인허가를 생략한다. 힘없는 서민의 재산권과 인권을 무시하는 ‘법 위의 법’이다.

‘힘없는 시골 노인들이니 그렇지 강남 사람들이면 저리 함부로 하겠는가.’ 전쟁과 같은 밀양의 풍경을 보며 진지한 사람들은 한탄한다. 그러나 행여 그 노인들이 불쌍하다 여기거나 동정하는 건 금물이다. 그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연대의 정신을 이미 몸으로 구현하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산을 오르며 노인들은 말한다. “1,000가구 사는 데서 10가구 사는 데로 송전탑을 옮기라 카면 잘못 아이가? 반대로 사람 많은 데가 전기 많이 쓴다고 거기 세우라는 것도 잘못된 기다. 이제는 송전탑이 우리 마을 피해 딴 데로 간다케도 싫다. 사람은 그래 사는 게 아이다. 나 혼자 살 수는 없는 기다.” (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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