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31 07:53
(친구들이 ‘근래 조용한 것 같다’고 말하면 나는 웃으며 대꾸하곤 한다. “지난 10여 년간 자유주의 세력과의 전투에 패배했음을 깨끗이 인정하고 내 색깔을 찾아보려 해. 물론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런 ‘징병 상태’에선 내 색깔을 거의 드러낼 수 없었지. 타고난 아나키스트가 볼셰비키 사수대 노릇을 한 셈이랄까.” 관련하여 생각도 정리할 겸 몇 차례 단상을 적어본다.)

 
반이명박 운동이 한창일 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반이명박 운동을 주도하는 분들은 하나의 가설을 갖는 듯합니다. 이명박이 마치 다스 베이더처럼 ‘우리 세계의 외부에서 침입하여 순수하고 건강한 인민들을 괴롭히는 악한’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이명박은 바로 그 인민들에 의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습니다. 이명박이 악한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이명박은 오늘 한국인들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런 이야기에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몇 차례 글을 쓰기도 했다. 글들은 적지 않은 반발과 불편, 그리고 얼마간의 공감을 얻었던 것 같다. 그 들들의 논지에 대해선 여전히 별 변화가 없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나 역시 반이명박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과 결국 같은 모양의 가설을 가졌던 것 같다. 이른바 진보적 경향의 시민들이 자유 시장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제쳐두고 정치적 자유의 문제에만 몰두하는 것은 음흉한 자유주의 세력이 그들을 미혹했기 때문이라는 가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다. 혹은 절반만 사실이다. 이명박 당선이 신자유주의 공세 이후 자본주의에 한껏 포섭된 한국인들의 반영이듯, 진보적 경향의 시민들이 자유 시장의 문제를 제쳐두고 정치적 자유의 문제에만 몰두하는 것은 그들의 삶이 자유 시장에 촘촘히 포섭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유 시장의 문제를 제쳐두는 건 단지 자유주의 세력이 그들을 미혹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제를 파고드는 게 제 삶을 공격하는 일로 '여겨지기'(물론 그들 대부분은 크든 작든 자유 시장의 피해자들이며 자유 시장의 문제를 파고드는 게 실제로 제 삶을 공격하는 일은 아니다.)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최선은 ‘시급한 정치적 자유의 문제에 올인’하며 자유 시장의 문제는 ‘물론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후순위’로 제쳐두는 것이다. ‘사회구조와 사회성원은 서로 반영되는 유기적 관계’라고 말해왔는데 정작 내 싸움에선 그 절반이 생략되어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 나름엔 언제나 ‘시급한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의 핑계가 늘 그랬듯이.

2013/10/31 07:53 2013/10/31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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