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21 23:18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에 초중고를 다 다녔다. 온 나라에 붙어 있던 포스터가 기억난다. 신동우라는 만화가가 그린, ‘백억 불 수출 천불 소득’이면 다 행복하게 살게 된다고 적힌. 목표는 진즉 달성되었고 한국은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돈 벌러 오는 ‘부자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시절보다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행복은커녕 세계 최고의 자살율과 최저의 출산율, 1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죽음의 사회다. 어찌된 일일까. 여러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주요한 원인은 역시 ‘자본주의적 행복’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봉건 사회는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수준이 신분으로 정해졌기에 행복이 인생의 이유거나 목표일 건 없었다. ‘남보다 행복해지고 싶다’든가 ‘5년 후 지금보다 행복해야 한다’ 같은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든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균등의 사회’가 시작되면서 행복도 생겨났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실은 ‘새로운 신분사회’였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실은 신분 사회라는, 극단적 모순이 바로 자본주의에서의 삶을 비극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무한 반복되는 불안 속에서 끊임없이 남과 내 행복을 비교하고(그래서 ‘내 행복’을 잃고) 미래의 행복만을 목표로(그래서 ‘오늘 행복’을 잃고) 살아간다.

자본주의이긴 하되 본연의 자유시장은 작동하지 않던, 독재 권력이 경제를 틀어쥐고 끌고나가던 시절 한국엔 그런 풍경은 만연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적 행복’은 민주화가 되고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극단적 자유시장주의가 밀려들어오면서 본격화했다. 그 변화의 속도를 사람들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늘어만 가는 불안과 피로, 삶에 대한 허무와 회의에 어떤 이들은 삶을 포기했고, 대개는 아이를 낳길 두려워한다. 아수라장 속에 태어난 아이들은 옛 아이들처럼 밥을 굶어서가 아니라 ‘왜 살아야하는 건지 알 수 없어’ 자꾸만 스러져간다.

‘모든 한국인’의 현실은 아니다. 맨 꼭대기의 소수는 오히려 그 어떤 시절보다 안정적이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저희들끼린 박 터지게 싸우지만 그들 소수의 체제를 거스르는 법은 없다.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걱정은 사람들의 마음, 마음의 향방이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허무와 회의에 젖어버리면 뜯어먹을 게 없어지고, 만에 하나 허무와 회의가 방향을 틀어 ‘기왕 죽는 거 꿈틀하고 죽겠다’고 나오면 체제는 위기를 맞는다. 체제는 다양한 면역 장치들을 마련한다. 배울 만큼 배우고 사회의식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면역 장치는 체제의 특정한 흉물스러운 부분에 관심을 집중시켜 체제의 전모나 본질을 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5년 동안 한국 사회의 모든 사회적, 진보적 에너지를 '쥐잡기'에 쓸어 넣은 반이명박 운동이 그 예다.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청춘의 관리다. 그들을 순종적인 노예로 만드는가 체제의 위협으로 만드는가가 체제의 미래를 결정한다. 청춘에 대한 대표적인 면역 장치는 ‘약’이다. ‘멘토’ ‘힐링’ ‘긍정의 힘’ 따위의 이름이 붙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불안과 피로, 허무와 회의를 청춘 자신에게 돌리게 하는 진통제이자 마약. ‘김난도’라는 약장수를 보자. 그는 진작부터 ‘최고의 소비 트렌드 전문가’라 불려온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는 소비자학 전문가이되 소비자의 편이 아니라 자본의 편에 선 전문가다. 이 사람이 청춘들을 모아놓고 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오늘 한국 청춘들의 현실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어왔던 일반적 현실’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제대로 놀지도 못한 채 20년을 고생해 대학을 들어가 한해 천만원이 넘게 바쳐가며 천신만고 끝에  졸업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건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다. 유럽 같으면 폭동이 일어나고도 모자랄 현실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놓은 기성세대 중의 한 사람이, 게다가 경쟁의 승자이자 체제 안의 전문가로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이 청춘들에게 해야 할 첫 번째 말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나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일까 진심어린 사과일까.

김난도를 비롯한 멘토라 불리는 사람들이 경쟁의 승자, 혹은 체제 안의 전문가라는 사실은 모든 걸 말해준다. 박경철은 단지 시골의사가 아니라 ‘최고의 주식투자 전문가’이며 혜민은 단지 승려가 아니라 ‘하버드출신 미국교수’라는 사실은 말이다. 경쟁의 승자, 혹은 체제 안의 전문가로서 그들은 청춘들에게 말한다. ‘태도를 바꾸면 얼마든 나처럼 될 수 있어.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네 안에 있는 거야.’ 그들 앞에서 청춘들을 내가 게을렀다고, 내가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내가 세상의 아름다운 면을 보지 않았다고 자책한다. 약장수들은 그 대가로 거액의 수입과 명성을 챙긴다. 아무리 막나가는 장사꾼의 세상이라지만 참 맹랑한 약장수들인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근래 들어 기성세대 가운데 그 맹랑한 약장수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거나 꾸짖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안해할 줄 아는 어른들, 사과할 줄 아는 어른들이 말이다.(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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