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5 18:21
부채 전쟁에 쓴 추천사.

"신자유주의는 1950~1960년대 케인스주의적인 노동타협으로 형성된 복지와 임금을 공격해 노동 유연화를 확대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내렸다. 그러면서도 소비를 축소하지 않기 위해 부족한 노동자 가계의 소득을 부채 경제로 밀어 넣었다. 즉, 부족한 소득을 메워줄 대출을 통해 ‘부채 인간’을 양산했고 채권과 펀드, 주식시장으로 내몰아 노동자의 미래소득을 전취한 것이다."(본문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자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사회 체제’로 최종 승인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후 2008년, 자본주의는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체제임을 스스로 공표했다. 자본주의가 바로 무너진 건 아니지만, 위기를 극복했다거나 건재한 건 더더욱 아니다. 자본주의는 팔다리가 잘리고 심장을 찔렸는데도 다시 일어나 더 포악하게 난동을 피우는 영화 속의 괴물처럼 억지로 살아있다. 그 포악한 난동 속에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스러져간다.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현실과 미래에 관한 전지구적 화두가 된 건 물론이다.

한국의 경우 그런 흐름과 그다지 상관없는 듯하다. 근래 한국의 시민들은 어느 사회와 비교해도 정치적인 관심이 많았고 촛불시위 등에서처럼 역동적이었다. 그러나 그 관심과 역동성은 거의 전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 문제에 머문다. ‘자본주의는 나쁘고 신자유주의가 문제’라는 따위의 말은 누구나 하지만, 당면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퇴행 앞에서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문제는 후순위의 일로 여겨진다. 과연 오늘 한국인들의 삶은 자본주의 문제가 후순위를 이루며 정치적 민주주의 문제가 뼈대인 걸까.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두 주요한 원인인 노동 문제와 교육 문제는 민주화 정권인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수십 년 퇴행시킨’ 이명박 정권에서 결정적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걸까.

흔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고 재벌공화국을 만든 것은 흔히 그들의 개혁의지가 후퇴했기 때문이거나 개혁의 애석한 실수로 해석되곤 한다. 그들은 그런 후퇴와 실수의 와중에도 여전히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에 애썼으며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 세력과 내내 반목했다는 사실에 기대어서도 말이다. 90년대 이후 시민운동 세력이 주도한 ‘경제민주화’가 경제의 민간화와 주주자본주의를 강조함으로써 결국 신자유주의에 봉사한 것 역시 애석한 우연이나 실수로 여겨진다. 과연 그럴까. 혹시 그 개혁과 민주화 자체에 그런 면이 들어있는 건 아닐까.

관련하여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민주화(neoliberal democracy)’라는 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적 민주화란 제3세계의 독재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될 때 ‘정치적 민주화’를 앞세워 인민의 고통과 저항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신자유주의적 민주화가 진행되는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매우 효율적으로 도입되지만 인민의 고통은 한층 배가된다. 민주화가 되면 살기 좋아질 줄 알았는데, 전엔 꿈도 못 꾸던 대통령 욕도 하고 정치적 비판과 행동도 한결 자유로워졌는데 이상하게도 삶은 갈수록 더 불안정하고 막막하기만 한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기대 수명이 민주화 이후 20년이 줄었다는 사실이나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율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은 민주화의 간판을 내걸고 밀려들어온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고 재벌공화국을 만든 것은 개혁의지의 후퇴거나 애석한 실수가 아니라 그들의 개혁이 본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 경제민주화 운동이 신자유주의에 봉사한 것 역시 그 경제민주화가 본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적 민주주주의 문제가 급하니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문제는 후순위라는 생각은 ‘현실적인 진보’도 ‘현명한 진보’도 아닌 괴물의 아가리에 내 머리를 들이미는 일인 셈이다.

보수정권 하에서 이런저런 정치적 퇴행들을 소홀히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얼마든 그 퇴행과 싸우면서 우리를 집어삼키는 괴물과 싸울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괴물과 싸우는 일엔 자연스럽게 정치적 퇴행과의 싸움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가 강화된 사회는 노동계급의 힘과 사회적 연대가 약해지면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와 싸움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싸움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걸 넘어, 굳이 둘로 나누어 생각할 이유가 없는 하나이며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싸움은 현실적이고 현명한 것이 된다.

그런 현실적이고 현명한 싸움에 꼭 필요한 채비 중 하나는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대한 학습이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날 맑스주의 경제학이나 사회과학 책을 끼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지난 5년이 그랬듯 아무런 학습도 없이 ‘나쁜 대통령’을 욕하는 것으로 충분할 만큼 단순하진 않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그 본래의 작동원리도 희한하기 짝이 없지만, 그간 수많은 사회적 상황에 대응하여 나름의 수정, 보완과 변신을 거듭해왔다. 현재의 자본주의에 대해, 그리고 현재의 자본주의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왔으며 앞으론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학습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현실의 얼개조차 보지 못한다면 현실을 현명하게 살아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용도의, 보다 많은 사람들이 되도록 쉽고 실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 책은 그에 부합한다. 물론 이 책은 대중소설처럼 술술 넘어가지도 저녁나절에 뚝딱 읽어치울 만큼 얇지도 않다. 완독엔 얼마간의 수고가 따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미래를 집어삼키는 괴물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치를 만한 게 아닐까.


2013/09/15 18:21 2013/09/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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