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9 22:00
이석기와 나는 동갑내기다. 만난 적은 없지만 우린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초중고를 다녔고 대학에 들어가선 그간 배운 것에 대한 회의와 반감에 자연스레 학생운동에 접어든 사람들이다. 당시엔 주사파는 물론 반미도 없었다. 운동의 목표는 ‘미국 같은 자유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광주학살의 배후가 미국이라는 게 드러나고서야 운동은 미국이라는 성역을 넘어선다. 85년 무렵 반미의 극단화한 형태로 김일성과 북한을 좇는 주체사상파(주사파)가 출현하면서 운동은 크게 둘로 나뉜다. 주사파와 엔엘(민족해방), 그리고 민족보다는 계급적인 문제를 천착하는 피디(민중민주).

2000년 ‘의회를 통한 자본주의 극복’을 표방하는 피디 계열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진다. 민노당 초기에 주사파는 소수였지만 ‘특유의 생활력’으로 수년 만에 다수파가 되고 결국 당권을 장악한다. 2008년 민노당의 피디 계열은 ‘당권파의 전횡과 패권주의에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며 진보신당을 만든다. 2011년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 두 대표는 탈당하여 민노당 당권파의 통합진보당에 합류한다. 그들의 희한한 행태는 ‘반이명박 연대’의 깃발 아래 덮이고 두 사람은 의회에 진출한다. 이석기와 주사파 동료들도 의회에 진출한다. 그 과정에서 ‘통진당 사태’가 일어난다. 운동권 내부에서나 통용되던 ‘경기동부’가 대중적 시사용어가 되고 ‘타락한 진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노회찬, 심상정은 당권파를 비난하며 다시 정의당을 만든다.

그 즈음, 민노당에도 참여하지 않고 현장에 남아 30년 이상 견결하게 활동해온 노동운동가 양규헌이 고향에서 농사짓는 형으로부터 "동생도 이제 진보 그만하지"라는 충고를 받고 낙심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와 같은 현장 활동가들이 그리 오랫동안 주사파의 실체에 대해 침묵해온 건 주사파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다른 의견은 모조리 ‘종북’으로 몰아가는 극우세력 앞에서 자기모욕이기 때문이었다. 속깊음 덕분에 그들은 이제 주사파와 한통속으로 취급되고 낙심한다. 그들 개인의 낙심만은 아니다. 희망버스를 비롯한 수많은 삶의 투쟁현장에서 가장 주요하게 활동하는 그들이 꺾이면 결국 대다수 서민과 노동자의 삶이 꺾이는 것이다.

반면에 주사파와 함께 못하겠다며 신당을 만들었다가 다시 주사파와 결합해선 국회의원이 되고 여론이 악화되자 "비밀리에 활동해서 그런 사람들인지 몰랐다" 발뺌하는 심상정이나, 주사파와 결합을 반대한 진보신당 당원들을 ‘좌익소아병’이라 비난했다가 이젠 주사파를 ‘정신병자들’이라 비난하는 진중권 같은 딱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이 마땅한 비판과 평가를 받는가, 지금처럼 비판은커녕 오히려 양식있는 진보정치인, 진보지식인으로 행세하는가는 전적으로 시민사회의 비판 능력에, 즉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와 관련하여 꼭 짚고 넘어갈 게 지난 25년 동안 한국의 진보진영을 휩쓸어온 ‘비판적 지지론’이다. 극우의 집권을 막기 위해 진보운동 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의 자유주의 세력과 연합해야 한다는 비판적 지지론은 주사파의 ‘인민연합’전술에 기반한 것이다. 비판적 지지를 선택한 많은 사람들을 주사파에 놀아났다고 비난할 순 없다. '극우집권을 막는다'는 대의는 주사파의 기획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중요하다. 문제는 그 대의에 대한 맹목성이 더 중요한 대의, 진보운동과 진보정치의 자주성을 잊게 했고 결국 ‘반이명박 연대’의 깃발을 거치면서는 진보운동과 진보정치가 거의 괴멸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주사파가 그런 맹목성의 폐해를 무릅쓰면서까지 인민연합 전술을 고수해온 건, 자신을 적대시하는 남한 극우세력의 집권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북한 체제의 의중과 관련되어 있다. 결국 이석기와 주사파는 언뜻 곤경에 처한 듯하지만, 그들의 30년 활동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를 한껏 비난하고 조롱하는 우리는 여전히 그의 영향력과 의도 아래 있는 셈이다.

일반적 차원에서, 모든 사람이 운동권의 역사와 족보를 알아야 할 이유는 물론 없다. 그러나 이 문제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었고, 양규헌과 심상정, 진중권 예에서 보듯 이 문제와 관련한 비판과 토론들이 터무니없이 왜곡되고 전도되고 있다면 최소한의 사실관계는 드러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한 비판과 토론, 그리고 사회성원으로서 내 책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 해괴한 수렁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첨언 - ‘주사파 또라이들은 박멸해야 한다’는 식의 감정적 태도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진보진영 전체를 ‘종북’으로 몰아가려는 극우의 의도에 부응하는 것이며, 사상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북한 체제를 존중하는 남한 사람이 주사파말곤 없는데 굳이 박멸할 필요까지 있을까? 사상의 자유가 어색하다면 신앙의 자유 차원으로라도 주사파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이전 서독 공산당(KPD, DKP)은 동독을 지지하는 ‘독일판 주사파’였다. 지지율은 1% 남짓이었으며 ‘비판적 지지’같은 특별한 폐해는 없었다.(경향신문, 혁명은 안단테로)
2013/09/09 22:00 2013/09/09 22:00

트랙백 주소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