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6/11 23:55
주례를 수락하면서 유일하게 내세운 조건은 "넥타이는 안 맨다"였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 결혼식이라는 게 두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 편한대로 하면 안 된다 싶어 "매보겠다"로 번복했다.

그걸 사려면 어디 백화점에라도 가야 하는데 요 며칠 그 만한 경황이 없었다. 어젯밤엔 결혼식 때 썼던 와이셔츠와 넥타이가 있나 싶어 아내와 뒤져보았지만 십몇 년 전 한번 걸치고 만 게 남아 있을 턱이 없었다.

예식장에 조금 일찍 가서 근처 백화점에 갔다. 와이셔츠부터. 한번 입고 말 것이니 비싼 걸 살 이유도 없고 해서 행사 매대로 갔다. 그런데 참 난감하다. 민무늬 흰색은 아예 없는데, 주례가 스트라이프 들어간 걸 입어도 되는 건지, 회색이나 파랑 색을 입어도 되는 건지...

10년 이상 옷이라곤 라운드 티, 점퍼, 모자의 조합으로만 때우며, 넥타이 맨 인간들과 상종 안하며 살아왔으니 그럴밖에. 몇 가지 들었다 놨다 하다가 넥타이는 시작도 못 하고 백화점을 나왔다. ‘주례가 넥타이 안 맨다고 결혼식이 깨지랴.’ 유한함이 철철 넘치는 강남의 백화점 풍경에 진작부터 비위가 상하기도 했다.

주례 대기실 들어온 만난 신랑이 그런다. “결국 안 하셨네요.” “백화점에 갔었어. 그런데...” “끔찍하시죠.” 신랑이 킥킥 웃는다. 이젠 됐구나 싶다.
2004/06/11 23:55 2004/06/1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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