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4 23:30
미국의 급진적 학자가 쓴 신간을 재미있게 읽고 책장을 덮으려는 순간 꺼림칙해졌다. 말미에 붙은 옮긴이의 말에 ‘저자의 얼굴에 진중권이 겹친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진중권을 상찬한 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이 책의 노선과 진중권의 노선은 거의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부시 류를 욕하며 오바마 류를 옹호하거나 사민주의를 최선이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극복과 사회주의 이행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진중권은 그런 경향을 모조리 ‘닭짓’이라 말하는 사람 아닌가. 이 책에 동의하는가 진중권에 동의하는가를 넘어 이런 왜곡은 심각한 사회적 해악이 있다. 사실, 근래 우리 사회엔 이런 식의 왜곡이 너무나 깊고 광범위하며, 그게 수많은 사람들의 정의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소란스럽지만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 역사 속의 급진성이나 다른 사회의 급진성을 옹호하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현실 속의 급진성을 옹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체제는 역사 속의 급진성과 다른 사회의 급진성이 현실 속의 급진성이 되는 걸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그 노력은 박제된 역사의식과 현실의식에 사로잡힌, 동시에 진보연/좌파연 하려는 치기에 사로잡힌 인텔리들과 결합하여 ‘이념의 에누리’ 현상을 만들어낸다. 일제 시절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상찬하는 역사학자가 유시민을 상찬하고, 미국의 급진주의자를 상찬하는 사람이 진중권을 상찬하는 것이다. 현실 속의 급진성은 그렇게 역사 속의 급진성이나 다른 사회의 급진성을 상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공격되고 배제된다. 체제로선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이념 정화시스템’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의식과 현실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역사의식과 살아있는 현실의식이 없을 때, 우리의 역사적 지식과 외국이론에 대한 지식은 그 양만큼 강력한 사회적 흉기가 된다.

2012/09/14 23:30 2012/09/1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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