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07 15:02

2012년0130김두수0172


구도자, 은둔자, 고독한 음유시인. 김두수를 수식하는 말들은 그가 범접하기 어려운 기인일 거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의 음악에서 나오는 신비스러운 기운은 그가 ‘필시 약쟁이일 거’라는 맹랑한 소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음악가들 중에서도 드물게 온후한 사람이다. 자본주의가 극단화할수록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말과 부인해 보이는 일의 거리는 멀어진다. 하고많은 좌파들이 자본주의에 일상을 사로잡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말할 때 조용히 자본주의의 율법과 그물망을 비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내 보임으로써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 속삭임으로써 자본주의에 균열을 낸다. 김두수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경쟁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들 곁에서 온후한 얼굴로 노래하고 술 마시며 천천히 여행한다.
 

김규항 = 초등학생 김두수가 궁금하다.
 
김두수 = 학교 다니고 어울리고 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학교가는 길에 개천이 있었는데 쪼그리고 앉아 햇살에 비친 물을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김규항 = 문제가 있었던 건가.
 
김두수 = 겉으로 볼 땐 문제가 없었다. 성적도 좋은 편이었고 특별히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았으니. 다만 사람들이, 어른들이 권하는 것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출세주의적인 가치들, 장래희망 대통령, 의사, 판검사 뭐 이런 것들에 왜 연연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6학년 때 담임이 음악선생이었는데 집에 찾아와서 이 아이는 음악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워낙 보수적인 분이라 음악은 광대짓이라 생각해서 라디오도 못 켜는 집이었으니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김규항 = 선생의 기타 주법은 독특하고 연주 실력도 정평이 있다. 기타를 처음 만진 건 언제인가.
 
김두수 = 중학교 다닐 때 처음 만져보긴 했지만 코드 몇 개 치는 정도였고 제대로 배우진 않았다. 가톨릭회관에서 독창을 해서 골목에서 여학생들이 기다리는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특별히 음악에 심취한 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역시 겉으로 볼 땐 문제가 없었는데 어울리긴 말썽꾸러기들하고만 어울렸다. 우등생들보다는 그런 친구들이 좋았다. 대구 지역에서 유명한 건달의 아들이고 자신도 건달로 성장한 친구가 있는데 여전히 가장 가까운 친구다.
 
김규항 = 그런 친구들이 세상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주진 않았을 텐데.
 
김두수 = 물론 번민은 계속되었다. 구도의 길을 가려고 절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구도를 하는 종교 조직도 결국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유일한 소득이었다. 종교에도 사회의 시스템과 계급도 있고 또 그런 걸 유지하기 위한 생리가 있고. 종교적인 건 좋지만 종교는 그런 것 같다.
 
김규항 = 대개의 종교는 종교적이지 않고, 그게 종교의 문제다. 1970년대 말의 대학은 저항적이었고 대학문화도 활발했는데.
 
김두수 = 학생이었지만 학생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도 관심 밖이고 늘 혼자였고 급우들과 섞이지도 섞일 기회도 없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 생각이 없는데 아버지에게 기대어 생활하는 게 불편했다. 1981년 겨울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려고 명동 피제이클럽이나 쉘부르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외엔 만날 어릴 적 친구들과 술을 먹고 이리저리 도보 여행을 다녔다.

김규항 =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시대는 전사를 거두지 않는다’는 그와 관련한 노래인가.
 
김두수 = 노랫말을 그리 잘 쓴 것 같지 않아서 불편한 마음이 있지만 좋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꽃다발 같은 노래다. 나도 잘못된 걸 보고 눈 감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기회가 닿았다면 당연히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으로 어울리지 않고 살다보니 그렇지 못했다. 그 시절에 저항의 대열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지금 다 존경스럽게 살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이름없이 스러져간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존경하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한다.

김규항 = 시스템 안에서 무리지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스템 밖에서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에 대해 예민하고 때론 공격적이다. 특별히 갈등을 빚은 기억은 없나.
 
김두수 = 내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일이 없진 않다. 1988년 두 번째 앨범을 냈을 때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이 잡혔다. 방송사 스튜디오에 들어서는데 처음 보는 피디가 나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더라. 돌아서서 와버렸다. 회사에선 난리가 났지만 그게 방송과는 마지막이었다. 그 피디는 아마 지금까지도 내가 왜 가버렸는지 모를 것이다.

김규항 = 초면의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건 말도 안되는 무례지만 사람이란 그런 게 관행이 되면 별 저항 없이 따르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조해왔는데 인간이란 어떤 존재라 생각하나.
 
김두수 = 난 그저 시스템 밖이 편했을 뿐이다. 굳이 답을 하자면 우주가 존재하는 데는 어떤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인간도 우주와 같은 존재이니 나름의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잘 순환하고 성장해야 하는 존재라는 건 분명한데 그 정확한 방향이 어딘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인간은 그걸 알아가는 도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규항 = 대개는 사람들이 삶에 어떤 기준을 두고 잘산다 못 산다 구분한다. 그리고 더 잘살기 위해 혹은 잘살지 못할까 두려워 시스템의 중심에 근접하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선생은 잘산다 못 산다의 기준 자체를 달리하는데.
 
김두수 = 욕망 덩어리로서의 삶. 욕망이라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데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무한한데 그걸 개척하지 않고 남 따라서 더 높아지고 더 많이 가지려는 삶.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좋은 것들은 다 가라앉아 버리고 물질적인 것들만 눈앞에 떠 있다. 그런 세계에 있다는 게 아쉽고 불편하다.
 
김규항 =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나.
 
김두수 = 삶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김규항 = ‘저 사람은 너무 현실적이야’라는 말이 있었다. 낭만도 없고 이상도 없고 오로지 실익만 따지고 당장의 실현 가능성만 따지는 사람을 좋지 않게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말이 사라져버렸다. 누구나 그렇기 때문이다. 우스운 건 그렇게 현실적이 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상은 지상의 지옥이다.
 
김두수 = 옛날에 학원 가는 아이가 없을 때도, 동네에 부잣집 아이 한두 명이나 과외할 때도 학교 가기 싫었는데 지금 아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하면 지옥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고 아이들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 들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간다는데 왜 멈추려 하지 않을까. 왕따라는 것도 결국 아이들이 사는 게 고통스러우니까 해소할 먹잇감을 찾는 것인데.
 
김규항 = 아이가 행복하려면 행복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조건을 마련하느라 아이들을 몰아붙여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가지만 그 대열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못한다. 아이들은 왕따로 다른 아이를 괴롭혀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면 어른들은 이명박처럼 나보다 현격하게 추악하게 살아가는 대상을 조롱함으로써 그걸 해소한다.
 
김두수 = 만석꾼에겐 만 가지 걱정이 있다고 했다. 아이가 물질적으로 궁핍하지 않게 살길 바라는 거야 이해가 가지만 아이가 잘살길 바란다면 사람이란 가진 게 적을수록 자유롭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가진 게 많으면 떠날 수 없다.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다면 성공한 삶이 아니라 노예의 삶이다.

김규항 = 자신을 대중음악계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두수 = 노래를 만들고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고 그걸로 적게나마 수입을 얻으니 주업이긴 하다.

김규항 =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대중음악계에 대해 개탄한다.

김두수 = 물론 대중음악에 지나친 예술적인 기대를 해선 안 된다.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하는 음악은 당연히 한계가 있다. 대놓고 장사를 목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이 좋아서 하는 좋은 음악가들이 있었고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린 그게 다 사라진 걸 개탄하지만 역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일 뿐이다. 대중음악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김규항 = 기억나는 좋은 음악가들은.
 
김두수 = 정태춘 선배처럼 여전히 활동하는 분도 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좋은 음악가들이 참 많았다. 요즘 젊은 인디음악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많이 들어보질 않아서 잘 모른다.
 
김규항 = 선생의 음악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강력한 소구력을 갖는다. 보헤미안 같은 곡은 처음 나왔을 때 그걸 듣고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풍문이 돌았다는데.
 
김두수 = 그런 풍문도 있었고 목숨을 버리려던 사람이 그 노래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풍문도 있었는데 어쨌거나 나로서도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삶을 부정하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 아닌데 내가 온몸에 결핵이 퍼져 의사도 포기한 상태였다가 살아나 회복 중일 때 만든 노래라 그런 느낌이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오해를 줄이고 싶어서 다음 버전에선 가사를 조금 바꾸었다.

김규항 = 불안감에 매어 살아가다보니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는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길 꺼려 하는 것이다. 스스로도 그걸 꺼려 하고 또 그걸 꺼려 하는 걸 서로 미화해준다. ‘긍정적 사고’니 ‘칭찬의 힘’이니 하는 말들로.
 
김두수 = 그런 심연을 가지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가볍겠나. 불편하더라도 내 안을 들여다보면서 찾는 기쁨이 진짜 기쁨일 거다. 부흥회 같은데서 “행복하세요!” 막 박수치고 그런 게 인간의 기쁨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은 그런 정도는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그리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은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존재의 이유가 더 모호해지고 그만큼 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김규항 = 세태의 변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변화를 이야기했지만 갈수록 극단화하는 자본주의 세상이 우리를 더 그렇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한다는 건 단지 경제문제나 분배의 모순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회복하는 노력이기도 한데.
 
김두수 = 자본주의는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체제라고 하는데 실은 룰이 깨진 경쟁이라 사람들의 상태를 최악으로 만든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훌륭하게 만드는 사회 체제가 아니라는 것과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건 적극적인 좌파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런 체제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불쌍한 일이고 한편으론 그런 체제 속에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참 존경스럽다.
 
김규항 = 어떻게 그 불쌍함을 벗어날 수 있을까.
 
김두수 = 여러 형태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결국 내 문제다. 우린 참 귀한 존재들인데 물신에나 휘둘리는 그런 존재들이 아닌데 우리 자신을 낮은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말이다. 내가 귀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계기는 남에게 맡길 수 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예수나 부처가 2000년이 넘게 설파해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암흑세계에 있는 거다.
 
김규항 = 선생의 음악엔 그런 메시지들이 그득하다. 사람들이 그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는 서운함은 없는가.

김두수 = 만일 그렇다면 내 탓이지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탓은 아니다. 내가 덜 노래했기 때문이고 내가 서툰 탓이다. 한편으론 가면 갈수록 말의 값들도 떨어져서 말로는 교감도 설득도 잘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진실이라는 말은 더 이상 진실로 들리지 않는다.
 
김규항 = 선생의 노랫말처럼 정제된 말도 오염된다면 말이라는 게 이젠 뭔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김두수 = 내 경우는 곡을 만들거나 공연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가만히 있는 시간이다. 인간이라는 게 생활하기 위해 일을 할 때 생업에 종사할 때는 그다지 뇌를 고양시키지도 않고 영적으로 열려 있진 않다. 가만히 있을 때 깊고 새로운 사유를 하고 영적인 교감을 한다.
 
김규항 = 자본주의는 가만히 있는 걸 악덕으로 여긴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영어 점수 올리고 하다 못해 배에다 식스팩이라도 만들고. 가만히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부러 되새기지 않으면 영영 확보하기 어렵다. 선생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김두수 = 인생이란 여행이다. 음악은 그 여행과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동반하는 일이다. 고마운 일이다. (경향신문)

2012/02/07 15:02 2012/02/0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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