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10 19:30
시민의신문(시민단체 공동신문)과 한 여성주의 관련 인터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가, 다시 했다.
'성실한 논의'를 위해서.

야비한 위선 싫다, 애정어린 비판 경청을


작성날짜: 2004/05/09
장성순기자


드러내놓고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을 두 번 정도 했다. 젊은 여성주의자들(이른바 영 페미니스트)과 비슷한 목소리를 냈음에도 '마초'로 낙인 찍힌 남자가 있다. 바로 김규항 씨다.

2002년 4월과 5월 시네21에 실린 <그 페미니즘>, <그놈들과 그년들> 두편의 글이다. 또한 월간 <말>지 최보은씨의 '박근혜 연대론'에 대한 비판으로 촉발된 김규항 최보은 논쟁도 유명하다. 당시는 지방선거에서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해 일하던 여성운동계는 굳이 김규항 최보은 논쟁에 대해 어떠한 논평을 내지 않았다.

최근 김규항씨가 한겨레신문을 통해 총선 이후 '여성운동의 보수화'를 경계하는 인터뷰를 했다. 이에 대해 김규항씨와 그를 인터뷰했던 김성재 기자까지 '마초'로 찍히는 상황이 됐다.

최근 여성주의 인터넷신문인 '일다(www.ildaro.com)'는 김규항과 한겨레의 '여성운동 물먹이기'라며 한겨레의 <일다> 1주년 인터뷰를 거절했다.

지난 4일 어린이 월간지 '고래가 그랬어' 사무실에서 만난 김규항 씨는 "2년 전 소란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로 첫마디를 시작했다. 하지만 2년전 자신에 대해 반응과 동일한 반응을 보면서 자신에 대한 오해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그 오해가 개인 차원을 넘어 여성운동을 둘러싼 광범위한 사회적 소통 장애를 드러낸다고 생각하기에 좀더 성실하게 논의에 임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씨는 일단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기자의 '한겨레와 김규항의 여성운동 물먹이기'라는 글에 대해 '지나친 음모론'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 비중의 기사까지 회사의 의지를 완벽하게 관철시키는 신문은 조선일보뿐이며, 자신도 한겨레에 비판적이지만 한겨레가 그런 면에서 민주적인 편이라는 건 인정해야한다는 것.


"주류 여성운동 비판일 뿐"

그는 2년전 논쟁을 김규항 최보은 논쟁이라 불리는 건 잘못이라며 "최보은씨를 비판한 게 아니라 여성주의의 특정한 경향을 비판하면서 한 예로 최보은의 박근혜 연대론을 들었을 뿐인데 최보은씨가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규정하고, 더구나 최보은씨가 그 반박글에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끄집어 내어 논의를 감상적인 차원으로 몰아간 건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그놈들과 그년들>에서도 일부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의 수위와 동일하게 여성억압을 도외시하는 좌파남성들을 비판했다고 그는 얘기한다. 또한 모든 여성운동이 중산층 여성운동이며, 탈계급적인 운동이라는 것이 아니라, 90년대 이후 주류 여성운동의 분위기가 그렇다고 비판한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가 의도했던 일부 여성운동 비판이 여성운동 전부를 싸잡아 비판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책임도 있겠지만 일부에 대한 비판에 싸잡아 반응을 하는 여성운동 진영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김씨는 자신이 좌파계급운동을 따르는 여성운동만 지지하겠다는 건 전혀 아니라며 모든 건전한 사회운동은 연대와 존경을 나눌 수 있으며 좌파계급운동도 분명히 여성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유럽에서 여성운동이 좌파운동그룹과 갈등하고 결별하는 과정을 겪었듯이 한국의 여성운동 이 그런 경향을 보이고 '분리주의' 경향을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며 자신이 '운동권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던 100인위를 지지했던 것도 그런 이해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여성운동이 '분리주의'단계에 머물면 안 되며, 이제는 여성들끼리의 '자매애'를 넘어서 그 동안 배제시킨 진보적 남성들과의 연대와 소통을 추구해야한다는 것.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지적한 것처럼, 발화내용보다 '발화자'가 의사소통 시 중요한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이번 김규항 논쟁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박근혜 지지'와 '현정은 지지' 문제에 대해 젊은 여성주의자들의 비판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비판했는데, 그 젊은 여성주의자들이 자신을 '여성주의'를 재료로 삼아 남성성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건 어이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여성으로서 억압만 가지는 박근혜나 현정은 같은 여성과 여성으로서 억압과 계급적 억압을 2중적으로 가지는 노동계급 여성을 구분해서 보는 건 당연한 것이며, 그런 차이를 고민하지 않는 생리적 여성 옹호는 결국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여성운동을 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패거리문화 경계를"

90년대 초반 시민운동이 '소액주주운동'과 같은 탈계급적인 운동에 대해 좌파들은 비판을 했지만, 90년대 중반이후 시민운동이 파병반대, FTA반대, 비정규직 문제 등에 동참하는 등 점점 더 진보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걸 지적했다.

그런 일반적 경향에서 이탈하여 여전히 박근혜 지지니 현정은 지지니 하는 전근대적 주장이 나오는 유일한 경우가 여성운동이며, 물론 그런 경향은 여성운동의 일부지만 그 일부에 대한 비판에 한동아리로 반발함으로써 결국 여성운동이 사회적 존경을 받지 못하고 전체 여성운동이 정체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의 눈에는 현정은 지지 모임에 동참한 여성운동가 1, 2세대들은 학연, 지연으로 연결된 또다른 '패거리'문화로 읽힌다는 것이다. 그게 패거리 문화라는 혐의를 벗으려면 보편적인 사회의식의 상식을 지켜 주어야 하는데 현정은지지모임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박근혜 대표 역시 소수자를 대변하거나 여성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여성신문은 '핑크빛 리더시대'라고 극찬하고, 여성계는 침묵했다는 것에도 일침을 가한다.

현정은지지모임이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경제민주화를 위한 여성계의 개입이었다면, 남성들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성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운동에 감히 충고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자신은 여성운동 내부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여성운동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미 보편적 사회 문제로 돌출된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운동에 관심을 갖거나 의견을 내는 남성들에 대해 '자격'운운하는 것 역시 남성이 여성이 될 수는 없지만 남성이 여성주의자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모호한 분리주의가 자신처럼 여성주의의 일부 경향을 비판하는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남성이 여성주의 자체에 적대감을 표현하는 이문열 같은 인물과 똑같이 취급되는 건 온당하지 못한 일이며, 오히려 여성주의 문제를 비판할 때 결과를 잘 알면서도 여성주의의 문제를 비판한다는 건 여성 문제에 깊은 애정과 관심이 있음을 드러내는 거라 여겨져야 한다는 것.

진보적이라는 남성이 여성운동의 심각한 편향에 단지 침묵함으로써 여성운동의 호감을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야비한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제 여성주의가 노력하는 진보적 남성들에게 '손'을 내밀어야할 때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상에서 소박하게 여성주의를 실천하려는 남성들에게 여성주의자들이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길 바란다고.

사진제공: 한겨레신문
장성순 기자 newvoice@ngotimes.net
2004/05/10 19:30 2004/05/1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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