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30 23:56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 인터뷰]

우리 사회 교육실태, 아이들이 겪는 현실에 대해?

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아이가 최대한 행복하길 바란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행복의 기준이 많이 뒤틀려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화가 무서운 것은 사회 문제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본의 욕구와 가치기준에 물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는 게 다른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비교에 의한 불안, 그리고 미래에 대한 끝없는 불안이다.
노동자민중 대다수가 불안에 사로잡혀 아이들 교육에 대해 강박적으로 행동한다. 한국에는 교육은 없고 대학입시만 있다. 대학 안가면 죽는다는 불안감은 이해하지만 사실 대학 진학률이 90%에 이르는 지금은 대학 졸업장과 경제적 안정성은 대부분 상관관계를 잃었다. 다들 그런 계산은 없고 단지 불안감에 저녁까지 밤늦게까지 아이를 학원으로 돌리니 아이들이 뭐가 되겠나.
사람을 볼 때 조건과 껍데기만 보거나, 사람 사이의 유대나 공감, 만남을 통한 즐거움이 아니라, 뭘 가졌을 때나 가진 것을 불렸을 때 만족을 얻는다면, 그런 정서를 가진 어른이 된다면 어떨까? 진정한 사랑, 우정, 존경 그런 걸 나눌 줄 모른다면,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해도 진정한 행복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 교육문제도 운동과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개별로 있을 때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연대하고 투쟁해야 해결된다. 교육도 부모들끼리 모여 힘든 현실을 딛고 서로 위로하고 연대하며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무리 불안해도 나보다 못한 사람들의 아이들도 생각해야 교육이 선다. 고래와 관련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고래동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내 아이가 아니라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에 고래를 구독해주는 것이다. 여자는 고래이모, 남자는 고래삼촌이라 부른다. 아이들이 후원자에게 이 책을 보게 해줘서 고맙다고 편지를 쓰거나 같이 사진찍는 건 안 한다. 아이들은 누구나 이 책을 볼 권리가 있다.
고래동무가 많이 부족하다. 민주노총 정규직 노동자들도 나서주시라. 다들 내 아이 경쟁 때문에 전전긍긍하는데 아예 경쟁은 생각도 못하는 형편의 아이들도 많다.  잡지 하나가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를 둔 아이들을 위해 한 달에 9,500원 정도 내는 건 의미있는 연대이고 매우 교육적인 일이 아닐까.

노동자의 아이 키우기에 대해?

아이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전 세대 인간들이 만든 세상에 살고 성장하면서 그 틀에서 인생을 보내야 한다. 부당하고 거대한 아동인권탄압이며 죄를 짓는 일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아이들 교육문제에서는 차별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보수적인 부모들은 당연히, 진보적인 부모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잘못된 건 알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면서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아이들에게 노동자계급의 긍지를 가르치며 키워야 한다. 노동자가 빼앗기고 짓밟혀 억울하고 불쌍한 이들만이 아님을, 저들의 호의호식은 일하는 이들의 땀과 노동을 착취한 것임을 분명히 하자.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아도 내 자식 앞에 떳떳하게 건강하게 사는 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긍지다.
아이가 가난한 부모 때문에 불편을 겪을 순 있다. 하지만 가난한 부모가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고 아이도 제 부모를 부끄러워 하며 제 부모의 가난 덕에 부자인 사람들을 선망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인간다운 삶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는 어떤 부모보다 당당한 부모들이다.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현주소는?

"대공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민주노총에 의해 노동운동이 가로막혀 있다”는 평가가 있다. 이것이 바뀌지 않으면 진정한 노동운동은 소멸할 것이다. 노동자의 아이들이 자본의 가치관으로 교육받는 상황에서 10년만 지나면 임금인상투쟁을 하는 노동운동은 있겠지만,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은 존재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자본가들이 우리 몫을 빼앗아 호의호식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한다. 돈, 물질적 풍요만을 좇는다. 전통적 공동체의식조차 사라지고 있다. 울산이나 거제의 대공장 노동자들은 주식을 안하는 사람이 드물고 부동산 보러 다니는 게 유행이다.
금욕적이고 남 생각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사람이니 당연히 돈과 물질적 풍요에 대한 욕구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내 생각을 하면서도 옆을 돌아보는 것이 진보의식이다. 나도 힘들지만 옆 라인에서 똑같이 일하며 내 임금의 절반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나도 어려운데 저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를 고민해야 한다. 자본이 노동자를 정규와 비정규로 분리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하기를 피하면서 귀족노조니 뭐니 따위 소리들을 당당하게 부인할 방법이 있겠는가.
소위 개혁세력과의 연합문제를 다시 봐야 한다. 개혁세력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에서 집권 전에는 인민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진보적 색채를 띠려 노력한다. 또 집권 후에는 체제안정을 위해 보수화된다. 이런 본능적 작동원리에 비춰볼 때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등이 선거연합을 통해 집권한 다음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이 송전탑과 크레인에 올라, 혹은 길바닥에서 농성하며 겨울을 났지만 그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특히 민주당이 장악한 전주에서 버스노동자들 파업 상황은 선거연합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를 미리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이다.

진보정당 통합 논란에 대해?

민주노총이 양당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두 당의 당원이 아니라 함부로 말하기 어렵지만 통합이냐 독자냐를 말하기 전에 통합이냐 독자냐를 말할 만한 내용이 부족한 상태라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민주노동당은 현재 진보정당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태다. 개혁세력의 2중대가 아니라 선봉대라는 사람도 있더라. 그런데 진보신당이 그걸 분명히 선을 그을 만큼 주체적인 진보성이나 계급성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통합으로 가든 독자로 가든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최근의 선거연합 논란에 대해?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싶고, 박근혜정권이 들어서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바꿔보려는 정서는 이해할 수 있다. 한국사회는 특히 선거가 다가오면 기존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이 생략되고, 조야한 수준의 정치공약, 당장 눈앞의 현실만 봉합하는 공약들이 난무한다.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은 그래서 선거 때 더 단단해져야 한다.
노무현에게 진보적 기대를 했던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고 그 정체가 드러나자 “노무현이 대통령 되더니 변했다”고 했다. 자신들이 잘못 판단한 것은 반성하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만 욕했다. 가족 비리가 드러나자 지지율은 바닥을 쳤는데 노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번엔 그분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가 이명박이 얼마나 잔혹한 놈인가 하면서 대통령 노무현과 정권도 훌륭했다고 했다. 이런 감상적이고 개연성없는 변화가 이른바 진보개혁진영 대부분을 차지하는의 압도적 흐름이었다.
노동자인민을 힘들게 하는 정치와 정책들은 이명박 정권이 새롭게 만들거나 시작한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것들을 계승한 것이다. 중산층 지식인들 살기엔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이 하늘땅 차이지만 노동자 입장에선 그밥에 그나물이다.
그런 분명한 사실들을 덮고 무작정한 선거연합을 종용하고 주장하는 정서적 흐름이 압도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질문을 던지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성실한 답변이나 토론이 아니라 ‘쓸모없는 비현실적 몽상가’, ‘80년대 화석’이라고 공격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무책임한 태도가 이명박 정권은 바꿔야 한다는 대중에게 큰 파급력을 갖는다. 우리 사회 진보와 노동운동의 미래를 가로막는 사람들은 이젠 조선일보 같은 극우적 반공주의가 아닌 그런 자칭 진보들이다.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에 대한 반감을 사용하는 그들의 위세는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제 관심은 이 거대한 쓰나미가 지나간 후 진보적 자원과 가능성이 유의미한 수준 이하로 소멸해버릴까 하는 걱정이다. 한번의 선거나 정권교체에 목을 멜게 아니라 그런 역사적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가져야 할 운동의 중심성이라면?

사실 한국에서 유의미한 정치적 변화는 언제나 의회가 아닌 길거리에서 이뤄졌다. 촛불항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의회와 제도정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상한 강박을 갖고 있다.
개혁세력이 이명박 정권 패악질로부터 인민의 삶을 방어하지 못하는 것은 집권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똑같기 때문이다. 노동정책과 경제적 관점 등이 모두 같다. 그들이 집권했던 10년 동안 충분히 확인한 일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노무현 정권은 이명박 정권과 다를 게 없다는 것, 그리고 개혁세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역사적 기로에서 깊게 고민해야 한다. 이걸 부인하면 진보적 노동운동이라고 하긴 어렵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고 좌파였던 이들, 조금 덜 포악하게 신자유주의 자본화 흐름을 지지하는 사람들, 하지만 반노동자적 반민주적 반인간적인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세력, 그들이 극우독재세력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수용한다면 진보라고 할 수 없다. 진보는 어차피 자본과 보수 세력에 설득당하지 않으므로, 진보를 개혁세력에 흡수통합하는 건 자본이 노리는 효과적 전략이다. 신자유주의 원조세력과의 연대, 반노동자 세력과 연대하는 것이 진보의 가치를 구현하고 노동자 삶을 낫게 할 수 있다는 희망 자체가 우리를 괴멸시킨다.

운동사회 정파 갈등에 대해?

사회진보 운동엔 여러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또 그런 차이들이 건강하게 토론하고 연대함으로써 더 힘이 생긴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정파 갈등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감정적인 상황,  적보다 정파가 다른 동지를 더 미워하는 상황일 것이다. 역사에서  보면 적들로부터 극심하게 탄압받으며 가열하게 싸울 땐 그런 갈등이 훨씬 적다. 싸움이 제대로 안 되고 쇠락했을 때, 싸움이 체제에 편입되면 그런 문제가 더 불거진다. 정파갈등은 우리가 싸우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위해 운동하는지, 그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희미해졌음을 반증한다.
정파 때문에 우리 운동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운동을 제대로 안해서 정파가 그 모양인 것이다. 우리가 뭘 하는 사람들인지 노동운동의 목표와 장기적인 전략은 무엇인지 되새기지 않는다면 정파 갈등은 사라질 수 없다. 그리고 운동이 전체적으로 우경화하고 체제내화하게 된다. 선거연합에 대한 무작정한 호의는 사실 그런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최근의 복지논쟁과 진정한 복지?

북유럽에서 복지사회를 구현한 역사적 배경은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이다. 자본이 자기들 사회가 넘어가게 생겼으니까 사회를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것이 바로 사민주의다. 유럽에서 복지사회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라에 교양 있는 부자, 착한 부자들이 있어서가 아니다.
급진적으로 체제를 엎으려는 운동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좌파정치가 존재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지지하며 상당수 인텔리들이 그런 양식을 가졌을 때 실질적 복지가 이뤄진다. 자본의 속성은 다 똑같다. 얼마나 견제하고 투쟁하느냐에 따라 자본의 태도가 달라진다. 착한 부자, 착한 자본도 나오는 것이다. 복지는 시장 경제에서 수반하는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제도적으로 최소화하려는 제도다. 부자는 좋은 싫든 엄청나게 많은 세금을 낼 수밖에 없고 가난한 사람은 돈을 낸 부자에게 조아리지 않고 당당하게 혜택을 누리는 게 복지다.
우리 사회는 미국보다 더 흉악한 사회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식 혹은 유럽식사회를 앞두고 기로에 서 있다. 미국은 복지는 없이, 빈부격차와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착한 부자의 기부와 자선, 그걸 고마워하는 불쌍한 사람들로 유지되는 사회다. 유럽은 미국보다 훨씬 복지가 안착됐다. 복지는 좌파정치의 성장에 의해서만 유의미해지는 것이고 개혁세력이나 선거연합이 말하는 복지는 비현실적인 거짓말일 뿐이다. 박정희나 비스마르크를 들먹이며 보수도 복지를 할 수 있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건 복지가 아니라 독재체제의 예외적 시혜정책이다.

민주노총의 정체성과 노동계급에 주어진 사회적 책무?

헌신적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민주노총이 뭐하는 곳인지, 목표는 무엇이며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그런 질문들이 무색해졌다. 고민이나 토론도 별로 없어 보인다. 정체성과 목표가 없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어차피 그런 걸 이루기 틀렸다는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존중받을 수 없다. 민주노총이 전위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은 애초에 전위적 노동운동을 지도하는 운동체로 만들어지지 않았거니와 더 대중화되고 일반화된 상황에서 그런 조직으로 변화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짐을 풀어놓고 민주노조의 집합체라는 정체성으로 노동운동이 자본에 넘어가지 않는 대중적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위적인 조직은 그런 기반 위에서 얼마든 존재할 수 있다.


2011/03/30 23:56 2011/03/3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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