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2 21:46
며칠 전 후배가 고민이 있다며 만나자기에 바빠서 어렵다고 했더니 “나 이혼하면 형 때문인 줄 알아요.” 하며 전화를 끊는다. 영 찜찜해서 늦은 시간에 만나 소주 한잔했다. 사연은 짐작했던 대로였다. 후배는 목동에 사는데 초등 1학년 딸아이가 학원을 돌다 자정께야 집에 돌아온다,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해야 하고 자야 하는데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 연필을 쥐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 보다 못해 아이 엄마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돌아오는 건 “당신이 뭘 몰라서 그런다”는 말뿐이라, 이혼까지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이 둘의 일이듯 이혼도 둘의 일이지만, 아이 엄마의 태도는 한국 엄마들의 일반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아빠들이 아이 교육문제에 거의 참여를 안 하기 때문이다, 참여는 안 하면서 함부로 평가하려 들고 결론적인 의견만 내려 하니 의견이 옳고 그르고 이전에 반발심부터 생기는 게 당연하다, 아이 교육문제에 좀더 관심을 갖고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게 먼저다, 아이 엄마만큼 참여하면 아이 엄마만큼 의견을 낼 수 있고 아이 엄마도 네 이야기를 경청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자정이 넘어 연필을 쥐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덟 살짜리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아프다. 그러나 아이를 그렇게 생활하게 하는 엄마를 무작정 비난하긴 어렵다. 어느 부모가 제 자식이 세상에서 번듯하게 대우받지 못하거나 불안정한 삶을 사는 걸 달가워할까. 더구나 오늘 한국처럼 ‘자유 시장’과 ‘경쟁’의 가치만이 횡행하는, 부자들이 왕처럼 군림하며 국가의 비호 아래 가난한 사람들을 대놓고 몰아대는 야만적인 사회에서 아이가 좀 고생스럽더라도 되도록 높은 스펙을 가진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진지한 부모가 할 일은 그런 현실을 영웅처럼 무시하거나 도사처럼 초월하는 게 아니라 그런 현실에만 집중할 때 생기는 다른 문제는 없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되도록 높은 스펙을 갖길 바란다. 그런데 높은 스펙을 갖는다는 건 사회에 기여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에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높은 스펙을 가진 사람은 그 자체로 위험한 사람이며 높은 스펙에 걸맞은 수준의 인성이 요구된다. 인성이 조금이라도 스펙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사회에 꼭 그 만큼의 해악을 끼치게 되며 심한 경우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회성원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괴물’이 된다.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속을 뒤집어놓는 이명박과 그 패거리들은 그 살아있는 표본이다. 그들이라고 인생 내내 괴물 같았던 건 아니다. 그들 중에는 심지어 청년 시절 변혁운동에 투신한 사람들도 있다. 흔히 그런 사람들을 ‘변했다’고 하지만 실은 그들의 어린 시절에 길러진 이기심과 탐욕의 인성이 청년 시절 한때의 열정으로 잠시 가려졌다 나이가 들고 그 열정이 식으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인성의 뼈대는 대개 어린 시절에 형성되며 어린 시절에 형성된 인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결국 이명박과 그 패거리들을 반대한다는 건 설사 아이의 스펙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인성은 사수한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명박이 좋다는 부모들이 아이가 인성이야 어떻든 높은 스펙을 못 가질까만 걱정한다면, 이명박을 반대하는 부모들은 아이가 스펙도 스펙이지만 혹시라도 인성이 스펙을 못 따르는 사람이 될까를 더 많이 걱정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괴물을 욕하면서 괴물의 새끼를 키울 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한겨레)



2010/12/22 21:46 2010/12/2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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