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29 15:28

“소비를 이념으로 하는가”라는 정용진 씨의 방자한 말에 대해 몇몇 지식인들의 비판과 논평이 있었다. 그 가운데 조국 씨가 한겨레에 쓴 “국가와 시민이 정용진에게 답하라”라는 글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중앙일간지에서 ‘국가와 시민이 자본을 견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글은 정용진에 대한 ‘정서적 응징’으로 그쳐버린 느낌이다. 우선, 조국 씨는 국가의 역할을 말하면서 시장 자유를 무작정 옹호하는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 그 정권과 대립하는 민주당이나 참여당 역시 시장자유 옹호자들이라는 더 중요한 사실은 생략한다.

자본주의 사회엔 두 가지 자유가 있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유. 전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후자는 많을수록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지옥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통해 대통령을 ‘쥐’라고 골려도 잡혀죽지 않게 되었지만, 무한정한 시장의 자유를 통해 자본의 천국(속칭 ‘삼성공화국’)에서 살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무한정한 시장의 자유를 본격화하고 구조화한 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자본에 대한 국가의 견제’를 말하는 건 기만이 된다.

조국 씨는 또한 시민의 역할을 말하면서, ‘가격과 편리함을 유일 잣대로 삼지 않는 착한 소비’를 촉구한다. 좋은 말이고 얼마간의 실효성도 있겠지만 먼저 세 정권 내내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 사람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살펴야 한다. 진보적인 사람들조차도 아이를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재난영화적 현실에서 ‘착한 소비 캠페인’은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생존 자체가 숙제인 비정규노동자들이 ‘착한 소비’를 촉구받는 건 공정한 일일까?

시민에게 촉구해야 할 것은 ‘착한 소비’가 아니라 ‘시장 자유에 대한 경계심’이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이명박과 싸우듯, 나는 물론 내 아이들이 영원히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게 하려면 민주당이나 참여당 같은 또 다른 시장자유 옹호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촉구하는 것이다. 정치가 우리 삶에 눈곱만큼이라도 소용이 닿으려면 이런저런 시장자유 옹호자들에 대한 헛된 기대를 접고 진보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진보정치가 세력이 미미하지 않으냐고? 그게 바로 자본의 체제가 우리를 쳇바퀴 속의 다람쥐로 만들기 위해 심어준 어리석은 생각이다. 정용진의 방자한 말에 반감을 느끼면서 눈은 여전히 유시민의 ‘노무현 정신 계승’과 문성근의 ‘국민의 명령’에 가있게 만드는 어리석음 말이다. 진보정치가 세력이 미미해서 지지할 가치가 적은가, 마땅히 지지할 사람들부터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세력이 미미한가? 진보정치의 세력과 가치는 남이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주권을 가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시민이 각성한다 해도, 지금처럼 진보정당들이 만날 이명박 반대만 외치며 ‘이명박 프레임’ 안에서 맴돈다면 다 소용없는 일일 게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이제라도 정신 줄 바짝 잡고 자신들이 민주당이나 참여당과 뭐가 다른지, 시장 자유에 맞서는 진보정치가 뭔지 시민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마트 피자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착한 사람들에게, 세상엔 프랑스처럼 대형마트는 아예 시내에 못 들어오게 하는 정치도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차근차근. (한겨레)

2010/09/29 15:28 2010/09/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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