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8 15:57

일요일, 두 아이(열일곱 살 딸과 열네 살 아들)와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 갔다. 에고래핑, 킹스턴루디스카, 김창완밴드, 디르앙그레이, 뜨거운감자, 그리고 그날의 해드라이너 이언 브라운(스톤 로지스의 보컬이던).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돌아왔지만 아이들은 록페스티벌의 하루를 재미있어 했다. “여행 일정과 겹치지만 않았다면 지산(지산 록페스티벌)도 가면 좋겠는데” 아쉬워도 하면서. 둘은 천천히 록음악에 빠져들고 있고 나는 그게 참 기쁘다. 10대 시절에 록음악에 빠져드는 일은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제 때 하면 좋은 일’ 가운데 하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열다섯 즈음 록음악에 빠져들었다. 그 전율의 순간, 그리고 이후 진행 과정에서 피어오른 에너지와 감성의 결들이 내 삶에 남긴 흔적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안 그랬으면 어쩔 뻔 했나’ 안도하곤 한다.
딸은 꽤 어릴 적부터 나와 함께 음악을 들어버릇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문혜원이 부른 ‘아이러브락앤롤’을 흥얼거리기에 조안 젯의 원곡과 브리타니 스피어스의 것을 함께 비교해서 듣게 했더니 너무나 재미있어하던 기억이 난다. 그는 지금도 주로 여성 싱어송라이터, 혹은 보컬이 여성인 록밴드를 좋아한다. 아들은 작년 초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남학생답게 학교 다녀오면 가방 던져 놓고 동무들과(어지간한 아이들은 다 학원에 가버리고 없으니 자연스레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되는 집 아이들과) 노느라 음악 따위엔 도무지 관심이 없었는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어제 전기기타를 품고 앉아 ‘스모크 온더 워터’의 리프를 연습하는 그에게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와 깁슨 레스폴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나는 내가 양육을 맡은 두 아이가 록음악에 빠져들고 또 나름의 음악적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10대의 끓는 피와 ‘10대를 위한 인류의 문화유산’인 록음악이 조우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한국의 10대들은 사정이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록음악이 그들의 끓는 피에 도달하기 전에 그들에게 음악적 취향의 씨앗이 생겨나기 전에, 치밀한 준비를 거쳐 ‘공장 생산’된 기획사 음악들이 그들의 귀를 마비시켜버린다. 아무리 자유시장의 기치가 신처럼 존중되는 신자유주의 시절이라지만, ‘시험 기술을 익히는 짓’을 공부라 강요받으며 종일 따개비처럼 책상에 붙어사는 그들의 우울한 삶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잔혹한 일이다. 10대들을 위한 음악적 스크린쿼터라도 마련하자고 나설 법한 진보적인 미디어들도 한류니 뭐니 하며 한 동아리로 돌아가니 설상가상이랄까.
펜타포트에서 만난 후배가 자꾸만 두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는다. 왜 그러냐고 하니 “까맣게 그을린 게 너무 신기”하단다. 여름철에 아이들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는 것 또한 수천 년을 이어온 생태계의 한 풍경인데 이젠 그것도 신기한 일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하긴 한국의 10대들이 여름이고 겨울이고 얼굴 그을릴 겨를이 어디 있으며, 행여 잠시라도 그을릴라치면 ‘외모는 경쟁력’이라 생각하는 엄마들이 재빨리 자외선 차단제로 태양과 아이 사이를 가로막아 버리지 않을까. 변해가는 생태 풍경에 분노하는 우리가 왜 이 또렷한 생태 풍경엔 분노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강이나 산만 생태가 아니라 록음악의 열정에 솟구쳐 오르는 10대들의 몸뚱이도 여름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의 천진스러운 얼굴도 생태의 한 풍경이라는 걸 이미 잊어버린 걸까. (한겨레)


2010/07/28 15:57 2010/07/28 15:57

트랙백 주소 :: http://gyuhang.net/trackback/2013

  1. Subject: 이런 위선을 봤나

    Tracked from phlip의 홈페이지 2010/08/08 09:47  삭제

    우와 대단하다. 세상에 이런 위선이 있단 말이냐. 김규항씨가 같은 날 쓴 두 글이다. (2010/7/28)생태 풍경10대 시절에 록음악에 빠져드는 일은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제 때 하면 좋은 일’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