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19 18:05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 추천사. 게으름을 피우다 결국 강연 투어 중에 넘기느라 만족스럽지 않은 글이 되어버렸다. 지난번에도 한번 그랬는데.. 다시는 그러지 말자 다짐.)

기독교 성서에는 두 가지 신이 등장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신, 즉 모세의 신은 권위적이고 질투가 많은 존재다. 신은 제 명령을 잘 따르면 기뻐하고 상을 주지만 어기면 크게 화를 내며 벌을 준다. 자신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나 사회에 대해선 아예 어떤 사회인가 어떤 사람인가와 무관하게 차갑고 잔혹하다. 모세의 신은 자신들이 신과 계약을 맺은 유일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에 젖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배타적인 민족 신이다. 예수는 신은 우리에게 명령하고 누르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이해하며 우리와 대화하려 하는 분이라고 말한다. 모세의 신이 행여 화를 낼까 두려워 엎드려 눈치를 살펴야 하는 권위적인 아버지라면 예수의 신은 마주보며 대화하고 위로받고 의지할 수 있는 엄마다. 예수를 통해 신은 비로소 인류 보편의 신이 된다.
그러나 기독교가 종교체제를 갖추고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말하자면 예수의 정신을 잃어가면서 기독교의 신은 서서히 모세의 신으로 회귀한다. 특히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기독교의 신은 대개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와 부자의 신으로 군림해왔다. ‘이스라엘 민족’이 차지하던 자리를 ‘기독교 체제’가 대신했을 뿐. 오랜 세월 동안,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수많은 불의와 참혹이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부시의 신, 이명박의 신의 이름으로.
대체 신은 어떤 존재인가? 동학을 비롯한 한국의 민간 사상과 종교에서 신관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신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외부에서 절대적인 힘으로 우리를 관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 ‘본디의 나’로 존재한다. 신을 섬긴다는 건 지금 나를 뒤덮어버린 이런저런 부질없는 집착과 욕망들을 씻어 내고 본디의 나로, 신의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은 곧 신의 모습이다. 신은 내 안에 존재하듯 다른 모든 ‘내 안’에도 존재한다. 신을 섬긴다는 건 곧 이웃을 내 몸처럼 섬기는 것이다. 예수가 말한 그대로.
그런 신관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오면서 모조리 미신으로 치부되고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종교가 진정 종교적인 것들을 말살하는 기막힌 상황은 서양세계와 그 정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후 매우 일반적인 상황이 되었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런 종교를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 대해 정당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진정 종교적인 것들을 말살하는 종교에 대한 반감은 당연하지만, 그런 반감이 진정 종교적인 것에 대한 무작정한 부정으로 비약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선 안 된다.
그러나 많이 배우고 젠 체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어리석음에 빠지거나, 심지어 그런 어리석음을 부추겨 세속적 명성을 얻고 책을 팔기까지 한다. 이 책이 “디치킨스”로 한데 묶어 비판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그 가장 ‘저명한’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은 종교가 뭔지 제대로 모른다는 점에서 그들이 비판해마지 않는 사람들, 즉 진정 종교적인 것들을 말살하는 사람들과 같다. 테리 이클턴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통찰과 유머가 넘치는 필치로 그들의 무지와 오만을 차근차근 폭로한다.
이글턴은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애초 의도하지 않은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지구상에서 좌우분별이 없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과 한국이다. 두 나라에선 극우 성격이 짙은 보수주의가 우파, 자유주의 우파가 좌파라 불린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한국의 지배계층과 교육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우분별이 없으니 좌파의 존립이 어렵고 좌파의 힘이 적으니 좌파가 맡아야 할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은 더욱 공공연하게 무시된다. 이 책은 좌가 뭐고 우가 뭔지, 왜 오래 전에 폐기된 것으로 알려진 좌파적 상상력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해 또렷하고 깊이 있는 식견을 제공한다.
이글턴은 잘 알려진 사회주의자인데 사회주의와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역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일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핵심 메시지는 상당 부분 겹쳐진다. 기독교 신앙은 ‘사회주의 이상’의 것이지 ‘사회주의에조차 못 미치는’ 어떤 게 아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눈을 환히 밝혀주는 책이다.


2010/07/19 18:05 2010/07/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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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김규항의 신을 옹호하다.

    Tracked from 푸하의 서재 2010/07/20 03:34  삭제

    김규항 님이 쓴 앞으로 출간될 테리 이글턴의 <신을 옹호하다> 추천사입니다.  읽고 의문이 드는데 잠도 안오고 기록해봐야 겠군요.ㅎㅎ~  괄호안에 제 의문을 넣겠습니다.   각별한 의?

  2. Subject: 역시 김규항, 기독교의 이해

    Tracked from 곰장군, 글을 쓰다 2010/07/26 23:23  삭제

    원문 보기 http://gyuhang.net/1993 평소에도 여러 사람들의 글을 책, 블로그 상관하지 않고 잡다하게 읽는 편이지만, 그 중 아무개의 팬이다- 라고 자처할 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데, 여러가지 의미?

  3. Subject: 역시 김규항, 기독교의 이해

    Tracked from 곰장군, 글을 쓰다 2010/07/26 23:29  삭제

    원문 보기 http://gyuhang.net/1993 평소에도 여러 사람들의 글을 책, 블로그 상관하지 않고 잡다하게 읽는 편이지만, 그 중 아무개의 팬이다- 라고 자처할 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데, 여러가지 의미?

  4. Subject: h3o.de

    Tracked from h3o.de 2014/10/21 21:2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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