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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리고 그는 선포했다. "나보다 더 강한 분이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꾸부려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8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9 그 무렵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나자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마가복음」이 집필된 초기 기독교 당시엔 요한을 그리스도로 섬기는 세력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섬기는 세력보다 결코 작지 않았다. 두 세력은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기독교인들로선 자신들의 그리스도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게 명예로울 리 없었다. 만일 예수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렇게 적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마가복음」을 비롯한 복음서는 예수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것은 부인하지 않는 대신, 요한을 시종일관 '예수의 예비자'로 묘사함으로써 예수에 대한 요한의 역할과 영향력을 축소하려 애쓴다. 그런 정황으로 볼 때 예수는 요한에게서 단지 세례만 받은 게 아니라 순수하고 열정적인 갈릴래아의 다른 많은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요한을 존경하고 따랐으며, 요한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사상을 세우고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의 그룹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예수는 요한의 제자였던 것이다.
예수는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이다. 이 사실에는 단지 지역적인 의미뿐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 왼쪽으로 지중해를 끼고 요르단 강을 따라 세로로 길게 뻗은 팔레스타인 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맨 아래가 유다, 가운데가 사마리아, 그 위가 갈릴래아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은 역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유다 지역이다. 사마리아는 유다와 갈릴래아의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이방 지역 취급을 받았다. BC 721년 팔레스타인에 쳐들어온 아시리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순혈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3만여 명의 아시리아인들을 이주시켰고 그 결과 사마리아에는 혼혈이 많았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유다 지방을 가거나 유다 사람들이 갈릴래아 지역을 갈 때는 '더러운 사마리아인을 피해' 요르단 강 건너로 멀리 돌아가곤 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반발심에 자신들의 성전을 따로 세우고 그들과 완전히 절연했다.
갈릴래아는 팔레스타인을 통틀어 가장 비옥한 땅이고 '바다'라 불릴 만큼 큰 갈릴래아 호수에선 물고기가 많이 잡혀 어업이 성했다. 그러나 갈릴래아 사람들은 매우 가난했다. 그들이 경작하는 땅은 대부분 예루살렘에 사는 지주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갈릴래아 사람들은 지배계급과 로마의 이중적 착취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갔는데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갔다. 게다가 갈릴래아 또한 외세의 침략으로 적지 않은 혼혈이 생겼던 지역이었다. 사마리아처럼 이방 지역으로까지 취급되지 않았지만 유다 사람들에 의해 심한 차별과 천대를 받았다.
가난과 차별,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갈릴래아 사람들의 저항의식은 늘어만 갔다. 끊임없이 소요와 봉기가 일어났고 대개의 갈릴래아 청년들은 과격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불의한 세상과 맞서 싸우고 또 죽어 갔다. 예수는 바로 그런 참혹한 현실 속에서 성장했다. 예수는 마치 오늘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에 압살당하는 팔레스타인의 소년처럼, 동네 형들과 삼촌들이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다 줄줄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예수가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메시아관에 걸맞지 않다. 메시아는 당연히 유다 지역에서 와야 했다. 특히 그들에겐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다윗의 후손이 메시아가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베들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미가 5:1)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짐짓 억지스럽게 예수가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적는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들은 헤로데가 어린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려 하자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갈릴래아로 돌아온다.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부모 마리아와 요셉은 갈릴래아에서 살지만 인구조사를 받기 위해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예수를 낳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고향은 그 사람이 태어난 순간에 머문 곳이 아니라, 부모가 살았고 자기 자신도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한 사람의 사회문화적 원형을 만든 곳이라는 점에서 예수는 분명히 유다 사람이 아니라 갈릴래아 사람이다. 갈릴래아에서 온 메시아. 그는 메시아이되 영광의 왕으로서의 메시아가 아니라 인민들의 고통스런 삶을 함께하는 메시아로서 예고된 것이다.

알다시피 오늘 대개의 사람들에게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온 메시아도 유다에서 온 메시아도 아닌 '교리 속에서 온 메시아'다. 그 연원은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325년 최초의 기독교인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에 있는 제 별장에 세계의 주요한 주교들을 모아 놓고 회유와 협박으로 예수가 '하느님과 동일 본질'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당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자유로운 편이었는데 대체로 예수가 하느님과 같은 존재라는 의견보다는 예수가 사람보다는 높지만 하느님보다는 낮은 존재라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처음엔 그런 신학 논쟁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이내 예수가 하느님의 지위를 얻으면 자신의 지위도 함께 격상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교리의 통일을 통해 자신의 통치력을 한껏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그런 정치적 의도로 내려진 결정은 더 이상 다른 견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정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교리의 뼈대가 되었다. 그 후 오늘까지 거의 모든 지식과 신앙에서 예수는 교리 속의 주인공으로 출발한다.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예수가 정말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활동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왜 죽임을 당했는지 따위는 모조리 생략한 채, 그를 단지 교리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한다. 정말 예수는 단지 교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그 고단한 삶을 살았단 말인가? 이성으로든 신앙으로든, 예수를 '갈릴래아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교리 속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예수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지표가 된다.

2010/01/14 06:24 2010/01/14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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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서울비의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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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를 '갈릴래아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교리 속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예수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지표가 된다.” — 김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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