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3/07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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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개 김단의 이름도 기억한다. 그는 98년에 쓴 딸 키우기라는 글에 처음 등장한 이래 여러번 내 글에 등장했다. 한 사람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그가 접촉하는 모든 대상에 반영되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다른 모든 대상들을 가늠할 만한 기준 대상 같은 게 있다. 내 경우는 아이들, 특히 김단이다. '특히 김단'인 건 물론 그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나를 마초로 공인한 주류 페미니스트들에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그가 말이 통할 무렵부터 '여성 의식'을 길러주려 애썼다. 그러나 사람이 어떤 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미숙한 분노기’도 있게 마련이다. 김단은 지난 한두 해 동안 특히 그랬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조폭 소녀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은 좋았지만 남자 아이 일반에 대한 적대감을 보이는 건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이 ‘페미니즘 운동’으로 이름을 바꾼 후, 마흔이 넘고 쉰이 넘고도 그런 ‘미숙한 분노기’로 일생을 보낼 듯한 여성들을 적잖이 보게 된다. 남성들은 그들을 두려워서가 아니라 성가셔서 피할 뿐이지만 그들은 자신이 최선의 전사라는 오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들의 관심은 대개 ‘남성이 누리던 것을 여성이 누리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매우 단순한 경험론자라서 합리적 판단을 하기 어려운 편이다.

그런 면에서 ‘미숙한 분노기’를 일찍 거치는 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백신일 수 있다. 나는 김단과 대화를 시작했다. 김단의 의견은 ‘남자아이들이 거의 예외가 없을 만큼 문제가 있어서 남자 일반에 대한 적대감은 그다지 그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김단의 의견으로 시작한 대화는 여러 차례 이어졌는데 그 가운데 내 의견은 대략 이랬다.

'내가 보기에도 남자아이들은 대개 생각이 없고 폭력적이고 야비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남자를 적대하는 건 훌륭한 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진짜 강한 사람은 겉으로 거칠지 않은 법이다. 필요할 때 분명히 강한 모습을 보일 줄 알아야 한다. 진짜로 남자들을 이기는 건 남자들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김단은 제 얼마간의 편향을 알아차린 것 같다.


(김단이 제 사진을 올리는 걸 허락했다. 다른 사람이 제 사진을 내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달라졌다.)
2004/03/07 00:58 2004/03/07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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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김규항

    Tracked from 돼지고냥 2004/03/08 12:5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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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ubject: 공부.

    Tracked from 切 or 絶 望 2004/03/08 13:17  삭제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아마 평생 아버지는 되지 못하겠구나 싶었다.서글프다거나 하는 감정이 아니다. 하나의 인격이 이루어지는데 '촉매'가 되기에, 나의 工夫는 너무나 부족하겠다는 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