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09/15 16:17
박노해가 다시 세상에 돌아오는 과정은 몇 가지 단계로 이루어졌다. 먼저 박노해는 나오기 일 년쯤 전에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수상집을 펴냈다. 추기경이 추천사를 쓴 그 책은 박노해에 대한 세상의 경계심을 풀어주었다. 정권이 바뀌고 양심수 석방문제가 불거질 무렵 박노해는 법무부장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공개되었는데 "한 때 극단적이고 편협된 사고를 가졌던 점을 인정하며 새 삶을 모색하고 싶다"는 반성문이었다. 뒤이어 박노해는 '준법서약서'를 썼다. 그는 준법서약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으며 그걸 안 쓰는 건 "유연하지 못한 태도"라고 했다. 출감하는 날, 박노해는 '다시' 언론사에 편지를 돌렸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힘내십시오. 사랑합니다." 파시스트들이 애독한다는 <조선일보>는 그 편지를 '감동'이라고 뽑았다. 모든 단계는 주도면밀했고 매체를 다루는 솜씨는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임을 방증했다.

"7년 살고 박노해처럼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감옥살이 못할 놈이 누가 있냐." 초장에 한대 패서 재우는 건데. 친구는 민망하게도 장세동이 옥살이할 때마다 전두환으로부터 위로금을 받았다는 얘기를 박노해한테 빗댄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건 박노해만 몰랐던 거 아냐." "농촌 공동체? 소리 없이 하고 있는 양반들 많아. 하루 다섯 시간 노동? 쌍팔년에 러셀이 한 얘기고. 도대체 새로울 게 하나도 없잖아."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돌아온' 박노해는 '변화'가 가장 주요하다고 했지만, 정작 그가 정색을 하고 하는 얘기들 가운데 새로운 건 없어 보였다. 나는 십오 년 전의 김지하를 떠올렸다. 오늘 김지하와 그의 생명사상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주인이 서비스라며 비단조개를 몇 개 갖다주자 친구의 목소리는 한 단계 높아지고, 소주잔만 비우며 "조개나 먹어 자식아" 하던 나도 왠지 울컥해서 거들기 시작했다. "<노동해방문학>하던 아무개는 종적을 모른다더라. 그래도 염치를 아는 사람이지." "사노맹도 다 나온 게 아냐. 한 명은 안 썼어." "준법서약서 얘긴 하지마 자식아." "썼다고 욕하는 게 아니라, 쓴 게 자랑은 아니지 않느냐는 거야. 안 쓴 사람들이 엄연히 있는데 말야." "강용주라고 우리하고 동갑내기 장기수 말야. 자기 어머니한테 쓴 편지 읽어봐라. 너나 나나 대가리 박고 칵 죽어야 돼." "이상해. 독립운동이고 민주화운동이고 어떤 놈은 3대가 망하고 어떤 놈은 혜택받는단 말야." "그게 바로 인생 경영 아니겠냐. 그것만 되면 맑스주의 아니라 친일 경력도 일생에 보탬이 되는 거야." 우리의 삶이 버려진 조개 껍질보다 시시해서였을까. 우리는 점점 취해만 갔고 주장은 주정으로, 주정은 다시 공전해갔다.

돌아오는 길. 사지를 못 가누며 연신 "조개나 먹어라 새끼들아"만 되내이는 친구를 부축하다가 나도 힘이 빠져 주저앉았고 이내 둘은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별이 총총하게 박힌 하늘을 보며 친구가 중얼거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었다. 망할 자식.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싸우는 사람의 영혼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랬다. 유토피아는 점심을 거르는 아이들을 알면서도 오늘 점심은 뭐로 때우나 고민하는 시민들의 구차한 삶 속에도,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전직 혁명가의 새삼스러운 외침 속에도 없다. 유토피아는 "아무 것도 아닌" 준법서약서 한 장 못 쓰고, 아들을 기다리는 칠순 어머니에게 "오래 사셔야 돼요."라고 말하는 내 동갑내기 장기수의 영혼 속에, 사람들이 '미망'이라 비웃는 그 고결한 영혼 속에나 있다. 주여, 갇힌 자에게 은총을. | 씨네21 1998년_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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