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22 13:35
편집장이 아량을 베풀어 자정 너머 들어가 오랜 만에 동네 친구들과 술을 먹었다. 허튼 소리도 좀 하고 하면서 유쾌하게. 동네 친구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아래인데 술 먹거나 운동할 때는 내가 아래다. 건강한 몸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이다. 권정생 선생을 생각하면 그 재산이 부끄럽다. 책상에 앉아 있기조차 힘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글을 쓴다. 사람들은 그를 강아지똥의 작가로만 기억하지만 성인 독자에게는 그의 산문이 좀더 치명적이다. 그의 산문은 한 치의 정치적 혼란도 없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고 싶다면 권정생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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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너에게 <권정생>을 권한다.
Tracked from reedyfox Trackback 2004/03/03 18:24 삭제어느날 아주머니는 몹시 바쁘게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거지가 구걸을 하러 왔다.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고 있던 아주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귀찮아서 퉁명스럽게 지금은 바쁘니 다른 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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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우리들의 하나님
Tracked from 꿈쟁이들의 꿍꿍이 2004/09/05 15:07 삭제권정생 선생님의 동화 <하느님의 눈물>에서는 어린 토끼 이야기가 나옵니다. 토끼가 풀을 먹으려고 하니 풀들이 바르르 떨면서 "먹으려면 어서 먹어"하고 다그칩니다. 토끼는 그런 모습을 보며
댓글 ::
김규항님 어느동네 사세요?
교하에 삽니다.
오늘 아침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고잡아 권정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을 주문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누구든 그 책을 읽고 실망한다면 제가 책값을 돌려드리겠습니다. 그 책이 '사랍답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고 말한 건 저자도 출판사도 아닌 저이니 말입니다..ㅎㅎ.
(사)한국독립영화협회 애니매이션 마당에서 퍼온글입니다.
(애니매이션 만드는? 윤죄우翁 글입댜)
(작년 여름쯤, 모 영화주간지에서 청탁 받고 써줬다가 빠꾸맞은 글입니다. 너무 개인적인 얘기만 했다나요. 그냥 함 심심해서 올려봅니다. 나란 애, 그때나 지금이나.)
I am...
난중일기 卵中日記 ①
나는 애니메이션 '노동자'입니다. 노동을 통하여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림 그리고, 편집을 하고, 레코딩해서 테입 만드는 일까지 애니메이션 작업공정의 대부분을 혼자서 합니다. 물론 단편이고, 이 나라에서 행해지는 거개의 단편애니메이션 작업이 그러하듯 컴퓨터를 사용해서 제작하는 방식인데, 아무튼 대외적으로 나는 애니메이션을 업으로 하고 사는 인간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난 백숩니다. 10분도 안되는 짧은 애니메이션을 몇 달 동안 끙끙대며 만들어봐야 애초에 호구지책으론 어림없고, 요즘 각광받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하신다는 소리를 간간이 들으며, 하나도 각광받지 못하는 저부가가치 작업만 하고 있습니다. 내겐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이라는 게 거의 전무합니다. 있다면 석달에 한번 나오는 영화계간지에다 써주는 원고료 몇만원 정도인데, 그나마도 언제 짤릴지 몰라서 단발성 칼럼이나 리뷰같은 거 말고 연재물 한번 실어보자고 편집장에게 애걸하는 중입니다.
근데 난, 이미 오래전에 뼈저리게 각성한 사실이긴 하지만 새삼 힘주어 고백하건대, 체질을 백수로 타고난 인간입니다. 곧, 백수 말고 다른 짓 하면 적응 못하고 시들거리다 죽어버릴지도 모를 인간입니다. 더불어 나는, 백수란 아주 좋은 것이고, 남들도 모두 다 백수로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 혼자 집안에서 빈둥대며 노느니 온 세상 사람들이 각자의 집안에서 다 함께 빈둥거리며 노는 게 즐거울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고, 백수로 지내면서 얻게 되는 여러가지 좋은 점을 이 지구상의 모든 선남선녀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타적인 이유에서도 그렇습니다.
백수는 심심합니다. 그리고 심심한 시간을 어떻게든 때울 소일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자연히 창의력이 증대됩니다. 즉 우뇌가 발달하고 창조적인 사람이 됩니다. 관찰력과 인내심이 키워지는 건 기본이고, 사람에 따라선 선진사회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심심함에 더하여 갖가지 사회적 몰이해 및 압박을 통한 단련의 결과입니다. 연애를 하고 싶어도 돈은 없고, 부모님한테 손벌리자니 눈치와 구박밖에 돌아오는 게 없으니까 결국은 새로운 종류의 경제체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내세울 직함이나 권위가 없으니까 인간관계에 개입된 폭력적 권력행사로부터 늘 피해를 당하고, 따라서 기존 권력의 전복과, 새로운 종류의 인간관계, 새로운 사회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울러, 사람이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축복으로 인정하고, 독려하고, '강권'하는 문명 하에서, 그것이 어떤 종류의 욕망인가를 돌이켜 생각해보는 통찰력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욕망의 운용이 아니라, 바로 그 욕망 자체가 무엇인가라는 문제,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문명의 정체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문제까지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백수란, 당대의 지배적인 사회체제가 인정할 만한 호구수단으로서의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한, 혹은 가지고 있되 사용하지 않는 일군의 족속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예컨대 날파리를 맘대로 생포했다 놓아줄 수 있다거나, 하루종일 방안에서 같은 자세로 미소 지은 채 누워있을 수 있는 '기술'의 보유자는 적어도 그것만 가지고는 절대로 입에 풀칠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행위 하나하나가, 어느 개인의 전체 삶에 끼치는 미묘한 영향력이나 비중이란 아예 무시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애초에 인간이란 존재의 저 복잡하고 우주적인 삶의 양을 담아내기에는 너무도 협소한 시스템입니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모든 형태의 노동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고, 그렇듯 삶과 분리된 노동은 예술과도 오래전에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와 같은 체제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인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레흐 톨스토이가 바라본 미래의 예술은 직업이 아닌 예술, 민중의 자연스런 삶 속에서 체현되는 하나의 살아있는, 창조적인 노동행위일 뿐이었습니다. 사실상 우리에게, 우리가 공들여 수행하는 노동의 과정을 통하여 얻어진 어느 결과물에 대하여, 그것이 완수되기까지의 모든 내력과 과정과 개연성에 대한 고려는 무시된 채 오로지 시장내에서 얼마만큼의 이익을 남기느냐는 것으로서만 가치판단의 기준을 삼을 수밖에 없다면, 이것은 분명히 혐오스러운 일입니다. 그 빈곤하기 그지없는 상상력이란 측면 때문에라도.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듭니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애니메이션만 만들고 살지는 않습니다. 더러는 글도 쓰고 더러는 게임도 하고 더러는 똥도 눕니다. 나는, 그냥 즐겁게 노동하고 싶은 사람이고, 노동이 예술과 같은 이름인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결국 그런 노동, 그러한 예술을 통하여,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명의 수척한 '사람' 일 뿐입니다.
책값을 돌려준다는 말에 솔깃!
오늘 책이 따끈하게 배달되어 왔네요*^^*
읽어 볼게요~~~~~~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고 있습니다.
좋은 책 소개시켜 줘서 고맙습니다.
저도 읽고 있습니다.
읽으며 제자신이 많이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