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9 11:29

좋든 싫든 나와 고래는 인과관계를 갖는다. 말하자면, 나 때문에 고래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지만 나 때문에 고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잡지의 발행인과 잡지가 이런 관계를 갖는 경우도 참 드물 것이다. 그래서 고래에게 가장 좋은 내 선택은 내가 이른바 '진보 개혁' 진영의 사람들에게 원만한 이미지를 갖는 것일 게다. 그러나 고래 창간 이후 내 활동이란 "개혁은 진보가 아니다"라는 말을 내내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래왔다면 지난여름 촛불엔 앞뒤 볼 것 없이 나를 실었어야 했지만 역시 그렇지 못했다. 촛불에 대한 내 견해는 대중들의 이명박에 대한 분노는 전적으로 존중하되, 그 분노가 '이명박만 없으면'으로 해소되어버리는 반동적 흐름은 반대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두 견해가 서로 상충되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내린 내 선택은, 우리 안의 대운하, 어른들은 왜 그래 같은 우회적인 소수의견을 내고는, 남은 기간은 평범한 촛불의 일원으로 그 분노의 열기에 예를 갖추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열기가 식고서야 촛불과 지식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내 의견을 내고 있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촛불기간엔 '왜 이 중요한 전선에 찬물을 끼얹느냐'는 반감을, 촛불의 열기가 식고나선 '촛불 땐 대체 뭘 했다고 잘난 척이냐'는 비아냥을 얻고 있다. 규항넷 방문자수가 절반으로 떨어지고 당연히 고래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감지되었다. 고래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들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순 없다"라고 말했지만, 고래의 항해를 훼방했다는 자책감을 없애긴 어렵다. 
스무 살 이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안 만나고, 하고 싶지 않은 일 하지 않으며 낭인처럼 살아오다, 고래 발행인 노릇을 하고부터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만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하면서 꽤나 애써왔는데, 그게 참 어쩔 수 없는 지점이 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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