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3 19:52

우리가 늘 잊곤 하는 사실은, 세상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힘은 보수반동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만큼이라도 어딘데’하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5년 전 유행하던 말로 하면 “현실적 진보로서의 개혁”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태도는 싸움이 아닌 것을 싸움으로, 변화가 아닌 것을 변화로 느끼게 한다.
물론 장기적인 이상에만 빠져서 단기적으로 실현가능한 변화를 소홀히 하는 건 잘못이다. 80년대에 좌파들은 그런 편향에 깊이 빠졌었고 그 덕에 참으로 지독하게 비난받고 또 상처받았다. 그러나 오늘의 위기는 80년대와는 정반대로, 단기적으로 실현가능한 변화에 집착하느라 누구도 장기적인 이상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장기적인 이상을 말했다 하면 무작정 ‘80년대 스타일’로 매도당하며(최근의 예로는 진보신당 안에서의 소란), 얼마나 대중적 호응을 얻는가가 활동의 유일한 척도처럼 여겨지는 풍토 속에서 진정성을 가진 좌파들은 ‘텔레비전 안에서의 좌파 활약’이나 구경하며 지레 무기력해한다.
좌파 운동에도 스타일과 대중적 호응은 중요하다. 세상에 스타일과 대중적 호응이 중요하지 않은 운동이 있던가? 조갑제의 운동에도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에도 스타일과 대중적 호응은 중요하다. 그러나 좌파운동에서 스타일은 스타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좌파적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 중요한 것이며, 대중적 호응은 좌파운동의 정체성을 지키는 한도 안에서만 중요하다. 그걸 넘어서는 순간 좌파운동은 ‘연예 활동’으로 전락한다.
어쨌거나, 그런저런 우울한 풍경 속에서 좌파적 주제들은 빠른 속도로 자유주의적 주제로 대체되고 있다. 위기의 순간이다. 지배체제로선 ‘좌파의 의학적 사망’을 기대하는 매우 낭만적인 순간이겠지만..

2008/08/13 19:52 2008/08/1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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