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5/14 00:05
현재는 언제나 우리에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현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제 정신을 가진 모든 한국인들이 반대한 일이 그렇다. 한국인들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이라는 점에서 다를 게 없는 베트남 전쟁을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믿었던 유일한 나라의 사람들이었다.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은 거대한 반공주의 파시즘의 감옥이었다. 오늘 한국인들은 줄지어 그 감옥 문을 나서는 중이다. 노무현이 온갖 위기를 넘어 극적으로 대통령이 된 일은 오늘 한국인들에게 부는 바람, 이른바 개혁의 바람을 상징한다. 바람은 거세며 그 바람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한국은 이제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반동 세력만 제거하면 짐짓 낙원에 이를 모양이다.

물론 그런 세력을 제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다른 중요한 것을 생략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라크 침략전쟁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고, 오늘 한국사회를 휘감은 개혁 바람과 그 상징인 노무현의 진실을 스스로 폭로하게 했다.

노무현의 침략전쟁 지지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품위 없는 세상에서 순진함은 가련함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세상은 이미 품위를 잃은 지 오래다. (이를테면, 한국사회의 모자람을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프랑스나 독일이 이라크 침략전쟁을 반대한 건 얼치기 지식인들이 말처럼 그들의 높은 양식 때문이 아니라, 옛 동구와 중동 지역을 독차지하려는 미영 제국주의에 대한 유럽 제국주의의 반발일 뿐이다.) 세상은 그저 어느 음악가의 노랫말 대로다. “이 좆같은 세상 다 썩어가네. 총알은 튀고 또 피바다 되어. 돈 쫓아가다 다 지쳐버렸네 어린애들은 다 미쳐버렸네.”

노무현이 침략전쟁 지지를 선택한 건 그 선택을 설명하는 노무현의 고통스런 얼굴과는 달리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노무현의 그런 선택은 지역감정이나 조선일보에 대한 노무현의 태도로는 추정하기 어려운 노무현의 보다 근본적인 태도, 바로 노무현의 이념에서 나온다. 그것은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노무현의 태도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미국 위주의 초국적 금융독점자본이 세계를 침략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길로 접어든지 오래다. 자본주의는 케인즈주의, 혹은 수정 자본주의로 불리는 최소한의 절제를 벗어던지고 초기의 약탈 자본주의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세계는 20의 부자 나라를 위해 80의 가난한 나라가 존재하고, 20의 부자를 위해 80의 가난한 인간이 존재하는 20:80의 세상으로 변하는 중이다. 이라크 전쟁은 그런 야만으로 회귀가 낳은(낳을) 수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다.

노무현은 한국 경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길을 닦은 김대중에 이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스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정치인이다. 바꿔 말하면, 오늘 한국의 개혁 바람을 상징하는 노무현은 지역감정과 조선일보를 거스르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당연한 귀결인 노동자 민중의 고통이나 제국주의 침략전쟁은 거스르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한 정치인이다. 그것이 개혁정치인 노무현의 진실이다.

개혁은 수구보다 좋은 것이다. 개혁은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과 교양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서 파시스트의 악취를 가시게 한다. 그러나 개혁은 그런 최소한의 안정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 파시스트의 악취가 가시는 것으로는 그다지 달라질 게 없는 노동자 민중의 삶을 능욕한다. 개혁 바람 속에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단순하다. 개혁이 생략하는 진실을 외면할 것인가, 외면하지 않을 것인가.(씨네21 2003/05/15)
2003/05/14 00:05 2003/05/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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