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9 23:56
뒤늦게 읽은 대선에 관한 고종석의 글 두개. 내가 그를 처음 알았을 때 그는 현실사회주의는 물론이려니와 거의 모든 사회주의적 경향에 대해 고른 반감을 보였었다. 아마도 그건 그가 대학시절과 초기 한겨레의 기자 시절 운동권의 집단문화에 입었을 모종의 상흔과 관련 있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 그는 어떤 민노당원보다 설득력 있게 신자유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정치세력의 성장에 대해 역설한다. 그가 사회주의자가가 된 것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의 교양이 세상의 변화에 반응하고 있을 뿐. 세상은 ‘복거일의 제자’를 자처하던 한 우파 교양인을 ‘거의 사회주의자’로 만들 만큼 사악해지고 있다.


미래를 위한 사표(死票)

정파 분열과 후보 난립이 겹쳐, 17대 대선 당선자는 1987년 대선 이래 가장 낮은 득표율에서 결정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이번 대선에서 나올 사표(死票)의 비율이 87년 대선 이래 가장 높으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이 던진 표가 사표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될 사람 밀어주자는 식의 부화뇌동, 곧 밴드왜건효과의 심리적 바탕도 그것이고, 지난 16대 대선 막판에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을 망설이게 했던 정치적 연산의 바탕도 그것이다.
그러나 사표에 정치적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대선 때 유효표의 51%가 넘었던 사표는 유권자 과반수가 노무현 후보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면서 노 정권의 행보를 일정하게 제약했다.
그 사표 가운데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 받은 표는, 비록 유효표의 4%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선거공학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사회민주주의 신념을 드러내고자 하는 유권자들이 바로 그만큼은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민노당에 던지는 표는 사표일 가능성이 100%다. 다시 말해 권영길 후보가 당선할 가능성은 0%다. 그러나 권영길씨에게 던져질 사표는 다른 사표들과 그 정치적 의미가 다르다.
지금 빅쓰리라 불리는 정동영 이명박 이회창씨 가운데 두 사람에게 던져질 사표는 어떤 인물이나 패거리에 대한 호오를 드러낼 뿐, 가치나 이념의 차이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빅쓰리가 일종의 연예인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들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대한민국의 앞날이 크게 다른 경로를 걷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네거티브 캠페인 탓에 정책선거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한탄이 곧잘 나오고 있지만, 과연 이들 빅쓰리의 정책이 그렇게 서로 다른가? 아니 설령 지금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정책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그 다름이 집권 이후의 실천으로까지 이어질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런 양두구육은 때깔 좋은 언어를 내세워 집권한 노 대통령이 지난 5년간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선량한 범여권 지지자들은 이명박씨나 이회창씨가 집권하는 걸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대북정책이 지금의 화해협력 노선을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이회창씨의 가장 격렬한 언어조차 극보수 유권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사탕발림일 뿐이다. 막상 집권했을 때, 그에겐 지금까지의 화해협력 정책을 뒤집을 힘도 의사도 없을 게다.
현단계에서, 대북 화해협력 정책은 미국 정부와 한국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니 말이다. 선량한 범한나라당 지지자들 역시 정동영씨가 집권하는 걸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노무현 정부가 정신분열적 태도로 증명했듯, 가상의 정동영 정부 역시 말은 어떨지 몰라도 그 몸뚱이는 재벌-관료 동맹 위에 얹혀 부익부 빈익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매진할 테니 말이다.
물론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권력잔치의 초대장에 박힌 이름은 달라질 것이다. 이명박씨나 이회창씨가 집권하면, 그 잔치에 그들의 친구가 초대될 것이다.
이 잔치에, 선량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낄 자리는 없다. 정동영씨가 집권할 경우엔, 그 잔치에 정동영씨의 친구들이 초대될 것이다. 이 잔치에도, 선량한 범여권 지지자들이 낄 자리는 없다. 지지자와 친구는 다르다. 대통령 선거의 격렬함은 이 잔치에 끼고자 하는 예비 파워 엘리트들의 욕망의 결렬함이다.
민노당은 그 잔치를 모두의 잔치로, 특히 서민과 소수자의 잔치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섣불리 믿을 일은 아니겠으나, 그간 이 정당이 복지와 분배와 평화와 인권 감수성에서 다른 정당들과 질적 차이를 보여온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민노당에 던지는 사표가 여느 사표와 다른 이유다. 그 사표는 이념의 사표이자 가치의 사표다. 미래를 위한 사표다.


투표

대선 후보 합동토론회에 나온 권영길씨는 다섯 해 전과 다름없었다. 논리 전개는 허술했고, 음절 경계는 흐리터분했다. 그 알아듣기 힘든 언어는 게다가 구체성의 살을 발린 채 관념의 뼈대로 앙상했다. 동문서답도, 썰렁한 유머도 여전했다. 요컨대 권영길씨는 다섯 해 전처럼 공부 없이, 준비 없이 토론에 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 배짱이 그를 설핏 신참자 이명박씨와 닮아 보이도록 했다. 아무런 사전정보나 선입견 없이 토론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권영길씨와 이명박씨를 우등생 넷 사이에 낀 열등생들로 판단했을 것이다. 끝끝내 텔레비전 토론을 거부한 채 대통령이 된 김영삼씨가 텔레비전 토론이라는 것을 했다면, 아마 권영길씨나 이명박씨 식으로 해치웠을 것이다. 메떨어진 억양과 빈약한 가용어휘로 말이다. 그러니 민주노동당에 미련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권영길씨가 아니라 심상정씨나 노회찬씨가 앉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워한다 해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아니, 권영길씨와 이명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네 후보 중 누구라도, 그가 권영길씨 자리에 놓였다면, 한결 더 효과적으로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유권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중도우파 세력의 지지 기반이 무너져 진보정치의 공간이 외려 넓어질 수도 있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제 후보를 잘못 골랐다는 뜻이다. 주류 정치세력 후보들 모두를 선택지에서 제쳐놓은 유권자들도 권영길-민주노동당에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는 눈치다. 뭔가 개운치 않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뭔가 개운치 않은 것이 꼭 권영길씨 개인의 매력이 모자라서만은 아니다. 정작 개운치 않은 것은 권영길씨를 아슬아슬하게 민주노동당 후보로 만든 정파의 이념적 봉건성이고, 좀처럼 화해하기 힘들어 보이는 민족지상주의자들과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의 당내 혼거 상황이다. 이질적 정파의 이 혼거는 갈등을 조정할 당내 정치력의 부족으로 자주 파열음을 낳고, 그 파열음은, 보수정당에서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사소한 추문들과 맥놀이를 만들어내며, 기호 3번에 표를 주기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다면적이고 상대적이다. 권영길씨는 다른 후보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 다른 삶은, 진보 유권자들 처지에서는, 존경할 만한 삶이었다. 신문기자로 일할 때 그가 얼마나 노동계급 지향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는 지난 20년간 한국 노동운동의 한복판에, 또는 그 전위에 있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경선을 거쳐서 그 당의 후보로 뽑혔다. 그것은, 이번이 몇 번째 출마든, 그가 한국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로서 정통성이 있다는 뜻이다.
기호 3번에 투표하는 것이 권영길씨 개인에게 투표하는 것이라기보다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자주와 통일 담론에 대한 완고한 집착이 이 당의 노동계급 정체성을 많이 흐려버리기는 했으나, 민주노동당이 제도권 안에서 한국 노동계급을 대표해온 유일한 정당이라는 사실은 엄연하다. 법적 출발로만 따져도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정당이지만, 민주노동당의 사회·정치적 역사가 2000년 1월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 정당에는 군사파쇼 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졌던 노동운동의 흐름들이 합류했고, 해방기까지 올라가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의 흐름들이 합류했다. 그러니까 기호 3번에 투표하는 것은 한국 노동계급의 역사와 그 미래에 투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은, 그 근본이 조직노동자들의 정당이긴 하나 적어도 다른 정당들에 견줘서는 우리 사회의 순정(純正) 아웃사이더들에게까지 눈길을 건네왔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80만 조합원이 각자 10명씩을 조직하여 800만 표를 노동자 후보에게 몰아주자”고 호소했다. 꼭 10명씩이 아니라, 조합원 모두가 제가끔 가족 친족 유권자들만 설득해도 민주노동당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미증유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조직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들 자신이 지역을 비롯한 이런저런 연고에 이끌려 표를 ‘반-노동자적으로’ 행사했기 때문일 테고, 민주노동당 안의 이른바 자주파마저 수구세력 집권 저지라는 대의와 민족주의 열정에 휘둘려 중도우파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실천했기 때문일 테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보수정치세력이 힘을 얻고 있는 데다 그 보수세력이 민생은 몰라도 민족주의 열정은 살려낼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지금은, 비판적 지지를 철회하고 계급투표를 하기에 딱 좋은 계제다. 물론 그런다고 권영길씨가 대통령에 당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표는 내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치를 시험의 모의고사 점수 노릇은 하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든 범여권이 재집권하든 한국 노동계급에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은,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한국 노동계급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2007/12/29 23:56 2007/12/2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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