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03 21:01
편해문 형에게 현상 퀴즈의 심사평을 부탁했더니 흐뭇한 소감문을 보내왔다. 알다시피, 그는 제목만으로도 전적인 지지를 보내 마땅한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의 저자다.


아이에게 놀이, 오락의 차이를 말해보라고 했더니 놀이는 '아이들이 스스로 규칙, 방법을 정해서 하는 거'라고 하고요. 오락은 게임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썼던 말이랍니다. 오락이라는 말이 아이들에게는 좀 낯선듯 하구 - 맹목


많은 고래들이 올려주신 글이 제게 참 좋은 놀거리를 안겨다주어 지금 벅차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조금 흥분하고 있네요. 먼저 오락을 게임이라는 말로 가다듬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제가 놀이와 게임에 대한 고래 식구들의 의견을 가려낼 수 있는 식견이나 자격이 있지 않다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다만 놀이와 게임의 도드라진 점이 있다면 살피고 우리 아이들이(어른 함께) 놀이와 게임을 바르고 고르게 만났으면 한다는 바람에서 써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놀이와 게임을 고루 만나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을 조금 많이 하고 있거든요.

올려주신 글을 두루 읽었어요. 참 잘 노는 고래들이 많구나 생각했습니다. 도드라지게 인상 깊었던 분들이 여럿 계셨어요. 멍석을 깔아놓으면 한 가락 하실 분들이 하나둘이 아닐 것 같아요. 올려주신 글에 제 생각을 조금 보태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 괜찮을까 모르겠네요. micol73님 말씀처럼 놀이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분지님 말씀처럼 놀이는 할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지지만 게임은 할수록 허기가 지지요. 옳으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몸소 겪은 일을 올린 글들에 제 무릎을 때렸습니다.

우스개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어른들은 못한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술래가 움직였다고 하거나 어 너 이빨 보였어(우리 동네에선 눈깜박이는 건 봐줬습니다)하면 꼼짝없이 술래뒤에 가서 손가락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내가 언제, 증거 대봐, 이렇게 나오니 놀이가 될 수가 없지요. 뭐 가끔 안움직였다고 우기는 어린 동무들이 있긴 하지만 이내 다른 참여자들에 의해(말없이 그저 빨리 술래의 무궁화꽃....을 듣고 싶다는 즉, 놀자는 표정하나만으로도) 이내 제압됩니다. - 아유해피


자 이 놀이에는 심판이 없네요. 그래서 그런지 당연히 다툼이 있습니다. 누가 반칙을 하나 안 하나 꼬나보고 있다가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나오는 심판이 없으니 이 경기가 엉망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안 죽었다고 우기는 아이가 있지만 내일 아침까지 울고불고 우길 필요는 없지요. 왜냐하면 지금 죽었다고 해도 다음 판에 조금만 기다리면 곧바로 살아날 수 있는데 뭐 하러 기를 쓰고 따집니까. 놀이의 재미를 아는 아이들은 간발의 차이로 겪는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넉넉한 아량으로 “그래 나 죽었다” 하고 받아 넘길 줄 알았습니다. 아 어른들은 좀 어렵지요. 좀 길게 따집니다. 그러다가는 노는 시간 다 지나갑니다. 아이들이 어서 재미있게 놀자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계속 따지면 미움 받습니다. 다음 놀이판에 쉽게 끼어줄지 모르겠네요.

아들이 만화책을 보면서 키득거리고 있다. 지나가는 어머니 왈 "놀고 있네~!"
- 여기서 "오락하고 있네~!"하면 이상하잖아요?
오락기라고 불리는 기계를 잡고 아들이 놀고 있다. 어머니 왈 "오락 그만하고 숙제해~!!"
-여기서 "놀이 그만하고 숙제해"라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 두루미


“노올고 있네~” 좋은 말인데 나쁜데 더 자주 쓰는 말이 된 것 같아요. 놀이와 게임이 어떻게 다른지 저처럼 이렇게 따지지 않아도 모두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밖에서 놀고 있어야 “야 이놈들아 그만 놀고 공부 좀 해라!”라고 동네가 떠나가게 소리 한번 질러 보지요. 욕도 한 마디 섞어서 말입니다. 빈고호님과 좁쌀한알님은 말을 어떻게 그렇게 재미나게 하시는지... (역시 고래님들은 놀이를 알어. 땀 안나는 놀이는 놀이가 아녀!)

놀이 : '놀'고 나면 '이'게 재미구나 하고 (놀고 나면 땀이 나고)
오락 : '오'락하고 나면 '악'소리나고 (오락하고 나면 땀이 안나고) - 빈고호

놀이: 하고 나면 즐겁고 신나고 행복하고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뿌듯한 것~!
오락: 돈 들고 맘 상하고 사람 망치고 인간관계 나빠지는 것~! - 좁쌀한알


여기서 잠깐 놀이와 게임과 도박과 전쟁 이야기를 해도 좋을까 모르겠네요. 지금 아이들이 하는 인터넷 게임은 이미 게임을 지난 것 같아요. 어느새 도박에 이르렀고 피시방은 전쟁터입니다. 도박으로 날이 새는 어른들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씻지도 않고 먹은 것을 치우지도 않습니다. 온갖 악취와 담배 냄새가 뒤섞인 놀음판에서 살아있는 것은 오로지 노름꾼들의 핏발선 눈동자뿐입니다. 자신에게 그런 냄새가 나는지도 전혀 모릅니다. 왜냐하면 노름은 사람을 무아지경으로 데려다 놓기 때문입니다. 밥도 물도 시간도 필요 없습니다. 몇날 며칠을 노름을 해도 배가 안고픕니다. 그런데 요즘 이와 같은 노름꾼 모습을 한 아이들이 떼지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놀이와 게임에는 기본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다른 점은 놀이는 놀면서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간다는 것이고 게임은 규칙의 단단함에 모무 투항해 철저히 규칙의 노예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지켜야할 어떠한 규칙도 없습니다. 지금 아이들의 게임은 놀이를 넘어 게임과 도박을 지나 전쟁을 향하고 있습니다. 게임 안과 밖을 혼동하는 아이들로부터 집안에 숨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아이들,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패배를 상대편 적이 있는 PC방으로 쳐들어가 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게임은 전쟁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놀이를 만나게 하고 싶습니다.

옛날 학교 다닐 때 가난한 친구들은 놀거리는 많았지만 오락거리가 없었구요. 부자집 친구들은 오락거리는 많았지만 놀거리는 없었던거 같아요 - 빈고호


빈고호님의 이야기는 평소 제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와 닿아 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 같아서요. 요즘은 가난한 동네 아이들의 놀거리 라고는 오직 게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놀거리가 없는 가난한 아이들은 놀이영양결핍에 더욱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일 값싸게 놀 수 있는 것이 게임이니까요. 생각해보세요. 1000원을 가지고 한 시간을 놀 수 있는 게 게임 말고 다른 무엇이 있겠어요. 잘 사는 아이들은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음악회도 가지만 돈이 있어야지요.

긴 말 필요 없이 놀이와 게임의 차이는 돈이 드느냐 안 드느냐에 달려 있어요. 돈이 있어야 운동을 해서 몸을 단련하고 음악회를 가서 정서를 가다듬지요. 돈이 없으니 값싼 게임밖에 더하겠어요. 요즘은 가난한 아이들이 잘 사는 아이들한테 싸움도 못 이겨요. 가난한 아이들이 몸이 고루 자라지 못하는 거지요. 가난한 동네 아이들 놀이라고는 오로지 컴퓨터밖에 없거든요. 피눈물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옛날 아이들은 놀면서 지영님 말씀처럼 그까짓 슬픔, 절망,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훌훌 풀어 던졌어요. 그러나 컴퓨터 게임을 하면 할수록 슬픔, 절망, 분노는 고스란히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지요. 우리 시대는 이런 아이들의 쌓인 분노를 현실에서 맞닥뜨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요.

놀이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몰입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오락이란 여가 시간(남는 시간)에 일상에서 얻은 스트레스나 피곤을 해소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이 놀이일 수도 있고 공부가 놀이일 수도 있고 생활이 놀이일 수도 있지만(그 사람이 일과 공부와 생활에서 자기 스스로 즐거움과 만족을 느낀다면), 오락이란 일과 공부와 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찾는 대치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길위에서


옳은 말씀입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인데요. 오락이라는 것, 여가라는 것, 게임이라는 것 따지고 보면 볼수록 자본의 발명품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왜 자본이 이런 것을 만들어냈을까 하는 점입니다. 제가 보기에 자본이라는 것이 모든 일터를 노동을 파는 곳으로 바꾸어버려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가짜놀이를 만들어 팔아먹기 시작한 것에 그 뿌리가 있는 것 같아요. 자 아이들이 하는 게임도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아이들이 본래는 놀아야 하는데 공부에 강제되고 있어 이러다가는 아이들이 미쳐버릴 것 같으니 움직이지 말고 방구석에 앉아 요것 갖고 놀아라 하며 신나게 가짜놀이를 만들어 팔아먹은 거지요. 아이들은 게임에 속고 어른들은 오락과 여가에 속는 악순환입니다.

밤새워 놀 수는 있어도 밤새워 오락하다가는 쓰러질 것 같네요.
또한 논다는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 때부터 자연스레 하는 거지만 오락은 오락기계, 오락부장, 오락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 맹목


저는 놀이와 노을을 잇는 just2kill님과 놀이가 추억이라는 상이님 말이 가장 낭만적으로 들려 좋았습니다. 예수가 그토록 탄압을 받았던 것은 그가 낭만을 모르는 사람으로 온통 휩쌓인 시대의 한 복판에서 낭만을 부르짖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을이 질 때까지 놀라는 뜻으로 노을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더군요(수십 년 전 국어선생님 주장). - just2kill

놀이는 시간이 지났을 때 추억이 되는 것이고
오락은 시간이 지났을 때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 상이


자본과 싸우려면 놀아야 합니다. 이런 저런 장난감과 게임기, 노래방 탬버린을 놓고 맨손으로 사람끼리 만나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얼마 전까지 다 그렇게 놀았습니다. 우리 자본에 빼앗긴 낭만을 되찾아 옵시다.

놀이는 내가 내켜서 한다.
놀이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놀이는 아무 데서나 할 수 있다.
놀이는 무엇으로든 할 수 있다. - napper4


놀이를 하는 시간은 micol73님 말씀처럼 자유를 누리고 아팠던 것을 치유하는 시간에 다름 아닙니다. 놉시다. 모두 고맙습니다.
2007/09/03 21:01 2007/09/0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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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반자본 계급연대 인간해방을 위한 놀이활동

    Tracked from 호모 루덴스 2007/09/04 14:20  삭제

    반자본 계급연대 인간해방을 위한 놀이활동 놀이가 중대한 이슈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