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25 13:43
<디워>를 둘러싼 소동을 보며 몇 해 전 한 선배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아이가 신화를 너무 좋아해서 고민이야." "신화 좋아하는 게 왜..." "아, 가수 신화 말이야." "아, 예." "중학교에 가더니 안 좋은 집 아이들과 어울려서인지 취향이 저속해졌어." "글쎄요, 전 음악은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지만 대중음악이 고전음악보다 저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대중음악 중에도 바흐나 모차르트에 필적하는 음악이 있죠. 신화가 그런 음악은 아니지만..." "그렇게 잘났으면 당신이 우리 애 데려다 키우지 그래!"

<디워> 문제가 간단치 않은 건 비슷하게 언급되는 다른 사건들(이를테면 황우석 사건)과는 달리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술엔 맞다 틀리다, 혹은 옳다 그르다라는 게 없다. 취향이 있을 뿐이다. 예술이란 나에겐 천상의 아름다움인 게 다른 사람에겐 하품만 나오는 것일 수도, 나에겐 쓰레기인 게 어떤 사람에겐 삶의 위로일 수 있는 것이다. 만명에겐 만개의 취향이 있다. 천박한 취향은 고전음악을 듣는 사람도 대중음악을 듣는 사람도 아닌, 고전음악을 들으며 대중음악을 듣는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에게 있다.

어떤 사람들 말마따나 <디워>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디워>가 특별하게 경멸당할 이유는 아니다. 알다시피 오늘 생산되는 상업 영화의 9할은 언급할 가치가 없는 영화다. 사실 <디워> 사태의 시작은 <디워>를 넘어 <용가리>도 나오기 전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평론가와 평론가 지망생, 그리고 인텔리들끼리 읽는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평론도 있어야겠지만 대부분의 평론이 그렇게 된 건 적이 식민지적 풍경이었다.(본토의 록음악 평론가는 좋아하는 뮤지션이 레드 제플린이라고 말해도 식민지의 평론가들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뮤지션을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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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잘난 그들에게 반감을 갖게 되었고 그 반감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는데(전문가들이 호평하는 영화는 부러 피하는) 결국 <디워>에서 폭발한 것이다. 심형래 씨는 영리하게도 대중들의 그런 반감을 장사에 이용한다. 훌륭한 행동은 아니지만 오늘 한국사회가 그런 행동을 집어내어 준엄하게 질책할 만큼 품위 있는 사회는 아니다. '애국주의 마케팅'이라는 것도 한심스럽긴 하지만 한국에선 이미 특별한 게 아니다. 월드컵 때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던 태극기를 잊었는가? 싸잡아 말할 순 없지만 네티즌의 집단주의적 행태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별할 게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특별할 게 없는데 매우 특별하게 여겨지는 배경에 인텔리들의 취향에 대한 경멸(이 ‘꼴 같지 않은’ 영화에 대한 경멸, 그리고 그런 걸 영화라고 열광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이 있다는 것이다. <디워>를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타인의 취향에 폭력적이지 않은가, 라는 반문은 맥락을 잃은 이야기다. 그들은 타인의 취향에 폭력적인 게 아니라 제 취향을 경멸하는 재수 없는 인간들에 반발하는 것이다. 동네 양아치들이 싸우다 파출소에 잡혀가도 ‘선빵'을 가리는법이다.

내 주변만 해도 <디워>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예의 보지도 않고 비웃는 사람부터 이런저런 이론을 들먹이며 조소하는 사람까지. 그 가운데 <디워>라는 영화에 대해 말할 분명한 자격을 가진 사람은 둘, 내 딸과 아들이다. 둘은 <디워>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중학 1학년인 딸의 평은 이렇다. "스토리나 구성은 괜찮은데 CG는 좀 엉성해." 전문가들의 평, 심지어 심형래 씨의 의견과도 많이 달라서 좀 당혹스럽긴 하지만 내가 그의 평에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하나였다. "아, 그래."

타인의 취향은 전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쓰레기라 해도? 그렇다, 쓰레기라 해도. 덧붙이면, 쓰레기라 해도? 라는 말은 쓰레기로 보여도? 로 바꾸는 게 좋다.(한겨레21, 일러스트 김대중)
2007/08/25 13:43 2007/08/2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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